‘결혼동맹’과 문화적 똘레랑스
김 영 철 (시민방송 RTV 상임이사)
눈앞에 워낙 많은 사건들이 꼬리를 무는 탓일까. 한국인의 절대 다수는 단일민족, 단일문화를 자랑해 온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회 성격의 대변혁’이라고도 할만한 변화인데, 처음에는 발밑에서 스멀스멀 진행되더니 요즘은 본격적인 궤도에 접어든 것 같다. 변화의 핵심은 ‘단일민족·단일문화 사회’에서 ‘다민족·다문화 사회’로의 급속한 이동이다. 최근에는 심지어 ‘결혼동맹’이라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나온다.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태국, 몽골 출신 여성결혼이주자의 증가 추세를 감안할 때 이들 나라와 한국이 남녀간의 결혼을 통해 거의 동맹관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 그토록 외쳐온 세계화와 그에 따른 다민족·다문화 사회로의 사회 변동은 정부 주도가 아니라 이렇게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이런 근원적 변화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상황 파악이야 피상적인 수준에서나마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과 그에 대한 대처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정부 차원의 준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민족·다문화 사회로의 이동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국무회의에서 “다인종, 다문화로의 진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억제의 단계를 넘어선 만큼 양적, 질적 차원의 세밀한 대책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곧이어 범정부 차원에서 ‘여성결혼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 지원 대책’이 발표되기도 했다. 문제의 중대성을 알고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여성결혼이민자들의 문제를 이들의 숫자가 급증 추세에 있던 지난 2005년까지도 단순한 이주노동자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느슨한 준비 태세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여성결혼이주자의 문제는 가정의 문제이자 자녀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이주노동자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사회적 준비의 소홀함까지 겹치면서 다문화 가정과 이들의 자녀는 수많은 문제에 노출되게 된다. 의사소통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 가정 및 사회 생활과 관련한 문화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화 충돌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지역사회로의 통합에 엄청난 애로를 겪고 있고 문화 충돌이 가정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2세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여성결혼이주자는 나이 차가 많은 한국의 농촌 남성과 짝을 맺는다. 양극화의 음지에 놓여 있는 한국의 농촌 남성들은 2세를 통한 가계의 명맥잇기를 바란다. 이 때문에 다문화 가정은 거의 대부분 아이를 낳게 되는데, 육아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문화에 익숙한 남성이 아니라 전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남게 된다. 아빠가 논과 들로 일하러 나간 사이, 그러지 않아도 서툰 언어의 엄마품에서 자란 아이가 교육과 사회 통합에 필수적인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교육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 현재 여성결혼이주자 자녀 5851명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고, 983명이 중학교, 161명이 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다. 2003년을 기점으로 여성결혼이주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0년부터는 이들의 수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도처 ‘제2 조승희’ 가능성
여성결혼이주자와 그 자녀들에 대한 효과적인 사회적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대목에서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참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씨를 곧바로 연상하는 것은 물론 무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이들을 창조적 대안없이 지금 상태로 방치하거나 문화적 동화정책의 대상 정도로 바라보는 일면적 정부 대책을 그대로 밀고간다면 전국의 도처에서 ‘제2의 조승희’를 키우는 것이 되고 만다.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이행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버지니아공대 총기 참사를 계기로 ‘문화적 동화’가 아니라 ‘문화적 똘레랑스(관용)’라는 말을 떠올려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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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철 (시민방송 RTV 상임이사)
눈앞에 워낙 많은 사건들이 꼬리를 무는 탓일까. 한국인의 절대 다수는 단일민족, 단일문화를 자랑해 온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회 성격의 대변혁’이라고도 할만한 변화인데, 처음에는 발밑에서 스멀스멀 진행되더니 요즘은 본격적인 궤도에 접어든 것 같다. 변화의 핵심은 ‘단일민족·단일문화 사회’에서 ‘다민족·다문화 사회’로의 급속한 이동이다. 최근에는 심지어 ‘결혼동맹’이라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나온다.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태국, 몽골 출신 여성결혼이주자의 증가 추세를 감안할 때 이들 나라와 한국이 남녀간의 결혼을 통해 거의 동맹관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 그토록 외쳐온 세계화와 그에 따른 다민족·다문화 사회로의 사회 변동은 정부 주도가 아니라 이렇게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이런 근원적 변화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상황 파악이야 피상적인 수준에서나마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과 그에 대한 대처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정부 차원의 준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민족·다문화 사회로의 이동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국무회의에서 “다인종, 다문화로의 진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억제의 단계를 넘어선 만큼 양적, 질적 차원의 세밀한 대책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곧이어 범정부 차원에서 ‘여성결혼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 지원 대책’이 발표되기도 했다. 문제의 중대성을 알고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여성결혼이민자들의 문제를 이들의 숫자가 급증 추세에 있던 지난 2005년까지도 단순한 이주노동자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느슨한 준비 태세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여성결혼이주자의 문제는 가정의 문제이자 자녀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이주노동자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사회적 준비의 소홀함까지 겹치면서 다문화 가정과 이들의 자녀는 수많은 문제에 노출되게 된다. 의사소통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 가정 및 사회 생활과 관련한 문화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화 충돌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지역사회로의 통합에 엄청난 애로를 겪고 있고 문화 충돌이 가정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2세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여성결혼이주자는 나이 차가 많은 한국의 농촌 남성과 짝을 맺는다. 양극화의 음지에 놓여 있는 한국의 농촌 남성들은 2세를 통한 가계의 명맥잇기를 바란다. 이 때문에 다문화 가정은 거의 대부분 아이를 낳게 되는데, 육아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문화에 익숙한 남성이 아니라 전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남게 된다. 아빠가 논과 들로 일하러 나간 사이, 그러지 않아도 서툰 언어의 엄마품에서 자란 아이가 교육과 사회 통합에 필수적인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교육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 현재 여성결혼이주자 자녀 5851명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고, 983명이 중학교, 161명이 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다. 2003년을 기점으로 여성결혼이주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0년부터는 이들의 수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도처 ‘제2 조승희’ 가능성
여성결혼이주자와 그 자녀들에 대한 효과적인 사회적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대목에서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참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씨를 곧바로 연상하는 것은 물론 무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이들을 창조적 대안없이 지금 상태로 방치하거나 문화적 동화정책의 대상 정도로 바라보는 일면적 정부 대책을 그대로 밀고간다면 전국의 도처에서 ‘제2의 조승희’를 키우는 것이 되고 만다.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이행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버지니아공대 총기 참사를 계기로 ‘문화적 동화’가 아니라 ‘문화적 똘레랑스(관용)’라는 말을 떠올려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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