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지는 말, 무거워지는 몸

‘고공행진’ 이명박 분석

지역내일 2007-01-30
말실수 잦아져 … 토론보다는 주자 눈치보는 분위기 확산

이명박 전 시장은 강하다. 역대 어느 주자들보다 강하다는 데 별로 이견이 없다. 구체적 실적에 기반한 대세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이 찬란할수록 그늘은 더욱 짙은 법이다. 이 전 시장의 대선가도에 놓인 덫은 더 엄중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는 4년 내내 대세론을 탔지만 결국은 마지막 문턱에서 고꾸라졌다. 이 전 시장은 최종승자가 될 수 있을까.

◆잇단 말실수가 신호탄? = 정치권 안팎에서는 벌써 이 전 시장이 대세론의 덫에 다가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의 말실수가 근거다. 이 전 시장은 최근 연달아 말실수를 했다.
충청도민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듯 들렸던 ‘육아발언’이 그것이다. 이 전 시장의 스타일상 말실수가 잦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캠프 내에서 항상 말조심을 당부했지만 이번엔 막지 못했다.
주변의 실수도 늘어난다. 최근 한나라당 내에서 농반진반으로 도는 얘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이른바 이 전 시장의 측근이라는 몇몇 의원이 주변 의원들에게 ‘협박성’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이 대통령이 되면, 당 대표는 누구, 2008년 총선 공천심사위원장은 누구라는 그림이 마치 기정사실처럼 돌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시장측은 “그런 얘기가 들리긴 하지만 사실확인을 해보지 않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메시지가 없다 = 대세론의 또 하나의 함정은 몸이 무거워진다는 점이다. 함정에 빠졌어도 몸이 가볍기만 하다면 점프해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욱 깊이 빠져들 뿐이다.
2002년 대선 때 핵심실무자였던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 전 총재 때의 사례를 보면 대세론이 잡히자 몸부터 둔해지더라”면서 “일정이 확 줄어들고 남은 일정도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개척하기 보다는 차려진 밥상을 먹는 식으로 안이하게 보낸다”고 말했다.
대세론에 빠지면 상황판단은 가벼워진다. 지난 대선을 겪은 윤여준 전 의원은 “대세론에 젖을 경우 가장 큰 문제는 가벼운 상황판단으로 모든 것을 너무 쉽게 내놓게 된다는 것”이라면서 “요즘 같은 미디어 선거에서는 주자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가 가장 중요하지만 메시지 개발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현안 관련한 소신발언이 줄어드는 것은 대세론의 흔한 덫 중 하나다. 어차피 이길 거라고 생각하면 확실한 입장표명을 안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현대차 사태와 관련해서 이명박 전 시장은 한나라당 주자들 중 가장 늦게 입장을 내놨다. 기자협회가 공개적으로 질문한 ‘언론의 지지후보 공개’ 여부에 대해서도 가장 늦게 답을 냈다. 지난 한반도대운하 및 과학도시 이후 최근 이 전 시장이 내놓은 새로운 메시지는 전무하다. 몸이 그만큼 무거워졌다는 반증이다.
이 전 시장측의 한 핵심실무자는 “지지율이 높아지면 그것을 받칠 수 있는 정책이나 이벤트가 촘촘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게 가장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알아서 기는 동맥경화 시작? =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다고 잘 나가는 주자에게 돈과 사람이 몰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 전 시장과 관련해서는 돈보다 사람과 관련한 구설수 조짐이 보인다. 특정 대학 출신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여든다는 식의 소문이 그것이다.
입바른 참모들이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이 전 시장 캠프 내부적으로도 그런 기미가 있다고 한다. 지지도가 높아지다 보니 예전과는 달리 이 전 시장과 참모들이 토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고 눈치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전시장도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치 전문가들은 대세론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상대 후보도 언론도 아닌 후보 자신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나라당 성향의 한 전략가는 “후보만 대세론에 안주하지 않으면 캠프분위기가 바람직하게 유지되지만 후보가 안주해버리면 순식간에 캠프분위기가 변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은 “작은 실수가 한번에 대세론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대세론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전시장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새겨들어야할 대목이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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