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장애가 엄마와 가족의 은혜였다”

발달장애 아들 자립시킨 김상용씨

지역내일 2006-03-07
지난해 미국 콜로라도주가 우주영씨(22)를 ‘발달장애아 자립 성공모델’로 선정했다. 장애아가 있음에도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우씨가 성공모델에 선정될 정도로 사회생활에 적응한 데는 엄마 김상용씨(45·대학강사)의 노력이 있었다.
큰아들 주영씨가 태어난 것은 김씨가 박사과정 중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머물던 1984년이다. 김씨는 엄청난 난산 끝에 주영씨를 낳았다.
김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며 “무리하게 자연분만을 유도하다보니 분만 시간이 길어졌고 그 과정에서 주영이 뇌에 산소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1986년 둘째가 태어날 때까지 김씨는 주영씨의 장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김씨는 “성장 속도가 너무 달랐다”며 “물론 그때도 ‘자폐성 발달장애’라는 걸 알진 못했고 워낙 말이 늦어 문제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주영씨가 우리말과 영어를 한꺼번에 접하는 외국생활을 힘들어 하는 것 같아 김씨 가족은 귀국을 결심했다. 하나의 언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무너지는 가정 일으켜 세우기
귀국한 김씨는 24시간 내내 주영씨와 붙어 지냈다. 동네 무용학원에서 걷기 연습을 시키고 성악 선생님을 불러 1년 내내 노래를 따라 부르게 했다. 1년 동안 단 한 곡을 익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장애인 복지관에 나가 언어치료와 조기교육, 치료에 도움이 되는 운동도 빠뜨리지 않았다.
김씨의 노력은 주영씨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계속됐다. 이런 와중에도 김씨는 남편이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할 때 마다 아이를 데리고 따라가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자폐성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수 없어 당시 관련 의료수준이 낮은 국내에서 치료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만 매달려온 김씨의 인생을 변화시킨 일이 일어났다.
“주영이를 위해서라면 달나라도 가겠다는 심정으로 매달리던 때라 당연히 ‘나’는 없었다. 어느 날 복지관 선생님이 ‘주영이네는 모두 네 식구인데 오직 주영이별만 반짝이고 다른 가족의 별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김씨는 처음엔 당황했다. 주영씨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김씨가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김씨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서야 처음으로 엉망진창인 가족들이 눈에 들어온 것 같다”며 “주영이한테만 정신을 쏟았으니 남편은 물론 둘째 아이와의 관계가 소원할 수밖에 없었으며 친인척들과도 마음을 닫고 산 지 오래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초등학교 1학년이던 둘째 아이의 일기였다.
일기에는 ‘나는 평생 결혼을 못할 것 같다. 왜냐면 형을 돌보며 살아야 하니까. 누가 나랑 결혼하겠다고 할까’라고 씌어 있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어린 마음에 드리운 부담감과 상처가 그대로 전해졌다”며 “내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기 위안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아이를 돌보며 지칠 대로 지친 내 모습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이후 김씨의 생활에 변화가 시작됐다. 엄마가 먼저 행복감을 느껴야 주영씨는 물론 가족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김씨는 자신부터 ‘자립’하기로 했다. 김씨는 자립을 위해 상담공부를 시작했다. 또 교회,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에서 상담 자원봉사도 했다.

엄마의 자기 찾기
변화된 삶을 살던 김씨는 1999년 남편이 다시 미국으로 교환교수로 가면서 다시한번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법률 덕분에 주영씨가 맞춤교육을 받게 됐다.
김씨는 “미국에서는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내리기 전에 4~5명의 전문가들이 6주간 관찰을 한다”며 “자폐성 발달장애는 백이면 백 모두 다 다른 장애 유형과 발달 상황을 보이기 때문에 각 사례마다 적절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만의 처방만 있는 것도 아니다”며 “보호자로서 내 아이에게 적절한 교육내용이 무엇인지, 교육 방향에 부모의 의견도 개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영씨는 이런 과정을 거쳐 처음으로 눈높이에 맞는 장·단기목표와 1년간 받아야 하는 교육내용을 선물 받았다.
이후에도 김씨는 수시로 전문가와 면담을 했다. 주영씨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다른 접근법이 제시되고 도달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 반복됐다.
주영씨가 좋은 교육환경을 계속 제공받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대가를 치러야 했다. 교환교수 기간이 끝난 남편이 ‘기러기 아빠’가 됐다.
미국에 남은 김씨는 본격적으로 상담과 복지 분야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김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혼자 보호자 역할을 하며 아들의 권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며 “사회정책을 제대로 알아야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깨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어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사회복지며 상담 관련 이론 모두 가정을 이루고 아들을 키우면서 겪은 내용이라 어렵지 않았다”며 “내 경험과 생각을 마음껏 말한 덕분에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토론을 주도했고, 성적도 좋았다”고 말했다.

패션몰에서 사회생활 시작
주영씨는 만 18세가 되던 해 미국의 여느 발달 장애아처럼 자립을 위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첫 직장은 패션몰 옷가게에서 옷 정리를 하는 일. 사이즈가 섞여 있는 걸 그냥 놔두질 못하는 자폐성향의 주영이에게 딱 맞는 일자리였다.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경제적 보조도 받는다. 매달 생활보조금과 활동보조원(발달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작업치료사) 보조금까지 받고 있다.
요즘 주영씨는 홈리스 시설 등에서 열심히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지역사회와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스케줄에 자원봉사를 많이 넣었다”며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그 사회를 위해 분명히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영씨가 자립생활을 시작하고 둘째가 대학에 진학하는 사이 엄마 김씨의 신분이 달라졌다. 김씨는 미국에서 기독상담과 사회복지분야의 석사학위를 각각 받았으며 리더십 박사과정도 밟았고, 임상경험도 충분히 쌓았다.
김씨는 “지난해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주영이가 발달 장애인의 성공적인 자립생활 모델로 뽑혔다”며 “주영이가 장애가 있음에도 온 가족이 건강한 관계를 맺고 행복하다는 것에 큰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영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족 간의 유대감과 각자의 사회 기여도가 높아졌다”며 “장애를 가진 주영이가 가정을 구원했다는 믿음이 들 정도로 우리 가족에겐 은혜이고 축복이다”고 말했다.
지난 해 김씨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귀국 후 바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또 올해 초 발족한 한국자폐인사랑협회(www.autismkorea.com)에 교육자문위원장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김씨는 사회복지분야에서 일할 후학을 양성하고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사회와 국가의 안정된 지원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에 적극 나설 생각이다.
김씨는 “발달 장애아를 둔 엄마들은 평생 동안 24시간 내내 외롭고 힘들게 살아간다”며 “개인 힘으로 이를 극복하라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발달장애아들의 자립과 복지를 위해 사회가 나서 짐을 나눠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리포터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살며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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