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정도의 정치 막가파 정치

지역내일 2001-01-16 (수정 2001-01-16 오후 4:10:45)
1월10일 수요일 저녁. 서울 강남 S음식점.
신 정치1번지라는 강남의 이 음식점은 100여명 가까운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올라
온 강창희 의원은 “어휴 추워!”하며 식당문을 열고 들어섰다. 친구들과의 저녁약속 때문이었다.
홀을 지나 예약된 방 쪽으로 걸어갈 때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어리둥절한 강 의원은 “무슨 행사가
있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수가 계속됐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며 “강창희다. 저기 강창
희가 온다.”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머쓱해진 강창희는 꾸벅꾸벅 어색한 절을 하고 방으로 들어
갔다.
1월9일 화요일 저녁. 제주도에 머물던 강 의원은 부인과 함께 한 음식점에 들렀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밥값을 계산하려는데 주인이 “됐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전에 경기도 어딘가 군수를 했다는 노인이 당신 부부 밥값을 대신 내주고 갔습니다.” 대전 중구
가 지역구인 강 의원은 경기도 쪽 전·현직 군수 어느 누구도 잘 모른다. 공짜 밥을 먹은 강 의원은
다음 날 서울에서는 박수세례를 받았다.

여권의 ‘왕따’ 식당서 박수 받다
강 의원은 알려진 대로 ‘의원 꿔오기’에 반발하다 자민련에서 제명 당한 사람이다. 비록 원내교섭
단체에 못 미치는 군소정당이기는 했지만 명색이 부총재인 그가 ‘왕따’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골
치가 너무 아파 제주도에 갔던 것이다.
1월11일 아침. 김대중 대통령은 “정도(正道)와 법치(法治)의 정치를 펴나가겠다”면서 “민주
적이고, 원칙과 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여론을 최고로 두려워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강력한 정부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가진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하
고 “야당과 잘 지내고 싶지만 거기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며 “민주와 법치, 서로 상대를 존중하
는 상생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날 회견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조금 부정적이었다.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언론
개혁’을 강조한 탓인지 “… 솔직히 실망스럽다. 예고했던 획기적 국정쇄신책도 보이지 않았고 정
치불안의 해소 방안 제시도 미흡했다.”는 논조가 주조를 이뤘다.
현재의 정치판에 대한 이 두 개의 극명한 보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민심과 여론이다. 민심은 솔
직히 불안의 극을 보이는데 정치판은 제각각 “my way”를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책임감이
전혀 없는 모습들이다. 국민들을 아주 우습게 보는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
들은 ‘눈 덮인 들판의 하이에나’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얼마전 한 교수는 직업별 평균수명을 조사 연구한 바 있다. 놀라운 것은 최장수자 그룹에 종교인과
함께 정치인들이 끼어있었다는 사실이다. 종교인들이야 고행과 수양을 통한 정신세계를 살기에 쉽
게 이해가 됐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였다. 호프집에 마주앉아 추궁하는
기자에게 얼큰해진 교수는 말했다. “나도 이유를 몰라. 근데 말야, 정치꾼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았
잖아? 국민들 몰래 몇 억씩 꿀꺽해도 전혀 표정에 안 나타나잖아? 그리고 오리발 내미는 선수들이잖
아?”
정치인들이 민심 동향을 전혀 모를 리는 없다. 청와대나 여당야당 할 것 없이 제각각 연구소 또는 여
론조사기관을 통해 수시로 여론을 살핀다. 예산과 담당인력도 만만치 않다. 총선 대선 때는 더욱 활
발한 여론파악 활동을 편다. 문제는 그들이 여론조사를 통한 수치의 변화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다가
도, ‘이슈’만 터지면 이성을 잃어버린다는 데 있다. 경제고 민생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막나가는 정치판에 여론의 질타
내일신문이 15일 한길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1월 월례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는 28.7%로 지난달에 비해 1.3%나 떨어졌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야당총재역할 수행 지지도 역시
14.2%로 2.3% 떨어졌다. 이는 여야 총재가 경제회생·민생안정은 돌보지 않고 정권재창출·대권획득에
만 집착하는데 대한 민심의 부정적 반응을 나타낸 것이다.
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생물에는 여러 가지 종(種)과 류(類)가 있다. 동식물이 있고,
하등·고등동물도 있다. 아메바 수준인 한국 정치가 고등동물의 수준에 이를 날은 올 것인가? 2002
년 대통령 선거와 2004년 총선이 예정돼있다. 한 정치인에 대한 대중음식점에서의 박수와, 여야에
대한 민심의 질타야말로 고등생물이다. 아메바의 진화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천심(天心)’으로
일컬어지는 민심이 바로 고등생물임을 잊지 말자.
안병준/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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