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사고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했을 경우 일률적으로 노동 가능 연령을 60세까지 인정해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 발표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는 직장에서 평균 54.1세에 퇴직하는 반면 조기 퇴직 이후에도 14년간 일하며 68.1세에 이르러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퇴장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20년 사이 69.8세(1985∼1990)에서 78.2세(2005∼2010)로 8.4세 늘어남에 따라 가능한 노동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지만 법원의 판단 기준은 예전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불합리한 점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시대에 맞지 않는 법원의 법적용 관행을 살펴봤다.
지난 91년 3월 대법원은 “일용노동자는 만 60세에 이를 때까지 가동하는 것이 경험칙상 타당하다”는 판결을 내놓은 이후 법원의 손해배상 산정은 일률적이다.
한국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등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지만 각종 민사소송때 배상 기준인 노동연령은 60세에서 바뀌지 않고 있다.
◆“60세 넘으면 노동력 인정 없이 위자료만 보상” = 부산지방법원 민사33단독 김홍기 판사는 지난달 25일 이 모(42)씨 등 2명이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를 당했다며 ㄷ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이 정년인 60세까지를 가동연한으로 보고, 피고측은 영구장애를 입은 이씨와 신씨에게 각각 8965만원과 4696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지난 2003년 10월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은 백 모(59)씨에 대해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 중 노동력 상실로 인한 부분은 170만원에 불과했다. 59세인 백씨의 노동연령을 60세로 보고 1년 정도의 노동력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60세가 넘어서 경제활동을 한 사람들의 경우는 사고 당시까지만 노동연령으로 인정하고 있다.
청소부로 일하던 최 모(여·67)씨는 3년전 시내버스에서 내리다가 운전기사의 급출발로 버스에서 떨어지면서 큰 부상을 입었다. 최씨는 “사고 당시 나이가 64세인만큼 3년은 더 일할 수 있다”며 자신의 노동연령을 67세라고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최씨의 노동연령을 사고 당시인 64세로 규정했다.
유원석 변호사는 “60세 전후의 사람들이 각종 사고를 당한 뒤 손해배상을 요구하면 법원은 가동연한을 이유로 위자료만 보상하는 판결을 내린다”며 “60세 이상 노동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법원이 과거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자료 상한선 탄력 적용 필요” = 교통사고 사망의 경우 법원의 위자료 상한선은 5000만원이다. 이혼소송 등 다른 소송들도 대체로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5000만원 상한선 규정은 법에 명시된 규정이 아니라 해당 법원 판사들의 내부적인 동의에 의한 것이다. 유사한 사안에 따라 위자료가 크게 엇갈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상한선은 90년대 1000만원에서 2000년 3000만원 등 점차 상승하고 있지만 변호사업계에서는 법원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물가상승 등 시대변화에 맞지 않게 너무 적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각각의 사안이 다른데 일방적으로 상한선을 규정한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위자료를 단지 손해배상 소송의 옵션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맹장수술을 하면서 맹장이 아닌 대장을 자르는 실수를 하고도 6년 동안 과실을 인정하지 않은 의사에 대해 법원은 8400여만원의 재산상 손해뿐만 아니라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는 대학 1년 때 수술이 잘못되면서 복부에 배설물과 가스가 가득 차게 되고 이 때문에 항생제 내성균 감염, 패혈증, 괴사성 근막염 등이 이어지면서 18차례에 걸친 수술과 치료를 받느라 2차례 휴학했고 신체장애에 우울증까지 겹쳐 정신치료를 받았다.
피해자가 당한 고통에 비하면 상한선 기준에 걸린 위자료 5000만원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002년 4월 경남 김해에서 발생한 중국 국제항공 여객기 추락사고에서도 위자료와 관련된 논쟁이 불거졌다.
당시 피해자측은 “김해 추락사고 피해자들에게 한국 법원이 1인당 위자료 상한선 5000만원이라는 전례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며 “괌 여객기 추락사고에서는 1인당 평균 20억원의 보상을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혼소송도 위자료 상한액 5000만원이 적용되고 있다. 재산분할과정에 법정에서 마무리되면 위자료는 결혼 기간을 고려해 1000만∼3000만원으로 정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5000만원 이상이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명숙 변호사는 “가사소송은 물론 각종 민사소송에서 위자료 상한선을 정해 놓은 것은 문제”라며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능력, 귀책사유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위자료를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로 인정됐다가 대법원에서 파기된 ‘B형 간염’판결 = 최근 직장인들이 업무와 관련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발생이 점차 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은 점차 산업재해를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하지만 대법원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B형 간염’의 발생과 악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학적 입증을 강조하며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고 있어 시대흐름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이 모(54)씨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B형 간염이 간암으로 악화됐다”며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공무상 요양 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판결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과로나 스트레스가 간질환의 발생이나 그 악화요인으로 작용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통념보다 의학적 전문견해를 더 존중해야 한다”며 꾸준히 B형간염의 악화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도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창석)는 “고등학교 교사인 남편이 과로로 B형간염에 걸린 뒤 간부전증으로 사망했다”며 김 모(42)씨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대상으로 제기한 유족보상금부지급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망인이 직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상태에 있었다 해도 B형 간염 자체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스트레스가 발병 원인이 되거나 악화시켰다고 볼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서울고법의 모 판사는 “전문적인 의학견해만을 인정해 업무상 재해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며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여러 질병들이 점차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것처럼 의학자료가 쌓이면 점차 재해 인정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기 오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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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 발표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는 직장에서 평균 54.1세에 퇴직하는 반면 조기 퇴직 이후에도 14년간 일하며 68.1세에 이르러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퇴장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20년 사이 69.8세(1985∼1990)에서 78.2세(2005∼2010)로 8.4세 늘어남에 따라 가능한 노동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지만 법원의 판단 기준은 예전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불합리한 점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시대에 맞지 않는 법원의 법적용 관행을 살펴봤다.
지난 91년 3월 대법원은 “일용노동자는 만 60세에 이를 때까지 가동하는 것이 경험칙상 타당하다”는 판결을 내놓은 이후 법원의 손해배상 산정은 일률적이다.
한국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등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지만 각종 민사소송때 배상 기준인 노동연령은 60세에서 바뀌지 않고 있다.
◆“60세 넘으면 노동력 인정 없이 위자료만 보상” = 부산지방법원 민사33단독 김홍기 판사는 지난달 25일 이 모(42)씨 등 2명이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를 당했다며 ㄷ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이 정년인 60세까지를 가동연한으로 보고, 피고측은 영구장애를 입은 이씨와 신씨에게 각각 8965만원과 4696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지난 2003년 10월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은 백 모(59)씨에 대해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 중 노동력 상실로 인한 부분은 170만원에 불과했다. 59세인 백씨의 노동연령을 60세로 보고 1년 정도의 노동력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60세가 넘어서 경제활동을 한 사람들의 경우는 사고 당시까지만 노동연령으로 인정하고 있다.
청소부로 일하던 최 모(여·67)씨는 3년전 시내버스에서 내리다가 운전기사의 급출발로 버스에서 떨어지면서 큰 부상을 입었다. 최씨는 “사고 당시 나이가 64세인만큼 3년은 더 일할 수 있다”며 자신의 노동연령을 67세라고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최씨의 노동연령을 사고 당시인 64세로 규정했다.
유원석 변호사는 “60세 전후의 사람들이 각종 사고를 당한 뒤 손해배상을 요구하면 법원은 가동연한을 이유로 위자료만 보상하는 판결을 내린다”며 “60세 이상 노동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법원이 과거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자료 상한선 탄력 적용 필요” = 교통사고 사망의 경우 법원의 위자료 상한선은 5000만원이다. 이혼소송 등 다른 소송들도 대체로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5000만원 상한선 규정은 법에 명시된 규정이 아니라 해당 법원 판사들의 내부적인 동의에 의한 것이다. 유사한 사안에 따라 위자료가 크게 엇갈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상한선은 90년대 1000만원에서 2000년 3000만원 등 점차 상승하고 있지만 변호사업계에서는 법원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물가상승 등 시대변화에 맞지 않게 너무 적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각각의 사안이 다른데 일방적으로 상한선을 규정한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위자료를 단지 손해배상 소송의 옵션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맹장수술을 하면서 맹장이 아닌 대장을 자르는 실수를 하고도 6년 동안 과실을 인정하지 않은 의사에 대해 법원은 8400여만원의 재산상 손해뿐만 아니라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는 대학 1년 때 수술이 잘못되면서 복부에 배설물과 가스가 가득 차게 되고 이 때문에 항생제 내성균 감염, 패혈증, 괴사성 근막염 등이 이어지면서 18차례에 걸친 수술과 치료를 받느라 2차례 휴학했고 신체장애에 우울증까지 겹쳐 정신치료를 받았다.
피해자가 당한 고통에 비하면 상한선 기준에 걸린 위자료 5000만원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002년 4월 경남 김해에서 발생한 중국 국제항공 여객기 추락사고에서도 위자료와 관련된 논쟁이 불거졌다.
당시 피해자측은 “김해 추락사고 피해자들에게 한국 법원이 1인당 위자료 상한선 5000만원이라는 전례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며 “괌 여객기 추락사고에서는 1인당 평균 20억원의 보상을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혼소송도 위자료 상한액 5000만원이 적용되고 있다. 재산분할과정에 법정에서 마무리되면 위자료는 결혼 기간을 고려해 1000만∼3000만원으로 정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5000만원 이상이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명숙 변호사는 “가사소송은 물론 각종 민사소송에서 위자료 상한선을 정해 놓은 것은 문제”라며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능력, 귀책사유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위자료를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로 인정됐다가 대법원에서 파기된 ‘B형 간염’판결 = 최근 직장인들이 업무와 관련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발생이 점차 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은 점차 산업재해를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하지만 대법원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B형 간염’의 발생과 악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학적 입증을 강조하며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고 있어 시대흐름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이 모(54)씨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B형 간염이 간암으로 악화됐다”며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공무상 요양 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판결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과로나 스트레스가 간질환의 발생이나 그 악화요인으로 작용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통념보다 의학적 전문견해를 더 존중해야 한다”며 꾸준히 B형간염의 악화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도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창석)는 “고등학교 교사인 남편이 과로로 B형간염에 걸린 뒤 간부전증으로 사망했다”며 김 모(42)씨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대상으로 제기한 유족보상금부지급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망인이 직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상태에 있었다 해도 B형 간염 자체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스트레스가 발병 원인이 되거나 악화시켰다고 볼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서울고법의 모 판사는 “전문적인 의학견해만을 인정해 업무상 재해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며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여러 질병들이 점차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것처럼 의학자료가 쌓이면 점차 재해 인정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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