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시간제 엄마’와 ‘전일제 엄마’

지역내일 2005-11-30
“여성에겐 취업이 문제요, 남성에겐 실업이 문제”임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듯 하다. “결혼은 선택, 취업은 필수”임을 외친지 오래요, 맞벌이 부부의 규범화가 적극 진행되고 있는 시대건만, “엄마가 직장 다니는 애 하곤 어울리지 말라”는 충고가 공공연히 떠돈다니 말이다.
여성의 취업 곡선이 연령에 따라 M자 형을 그린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성들이 출산과 양육에 들어가는 시기가 되면 여성의 취업 곡선은 예외 없이 하향추세를 보이다가, 자녀가 만 5살이 넘으면 취업 곡선이 다소의 상승세를 띠게 된다.
선진국에서는 이 M자 형 굴곡을 완만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추진한 결과,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유독 우리나라에선 자녀교육으로 인해 직장을 포기하고야 마는 ‘일하는 엄마’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게 웬일인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자녀 숙제=엄마 숙제’가 됨에 따라 엄마 손이 더 필요하게 되고, 더 더욱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경우는 자녀가 따돌림을 당하게 되기에, 시간제 엄마를 포기하고 전일제 엄마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혹 이 대목에서 일하는 엄마와 전업 엄마간의 갈등에 주목하면서 역시 여자들이 문제라고 단정한다면, 우리는 이번에도 ‘피해자 비난’(blaming the victim)의 오류에 빠지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시간제 엄마와 전일제 엄마가 갈등하는 기저에는 엄마 자신들로선 도저히 해결불능의 왜곡된 자녀교육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일제 엄마의 입시 정보력
일례로 우리 초등교육 시스템은 하루 종일 집에서 자녀를 위해 봉사하는 엄마가 있음을 전제로 짜여져 있는 듯 하다. 과제만 해도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인데다, 학교 급식당번이니 등굣길 교통정리니 해서 엄마의 자원봉사를 학교생활에 유기적으로 통합시키고 있다. 물론 사랑하는 내 자녀를 위해서라면 우리 엄마들이 마다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문제는 일하는 엄마 비율이 50%에 육박함에도 전업 엄마를 기준으로 엄마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음 아니겠는가? 엄마들에게 요구하는 자녀를 향한 책임과 의무가 그토록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라면, 엄마 아빠가 함께 나누어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것 같다. 입시위주의 교육제도 하에서 전일제 엄마의 입시 전략 정보력은 그 어느 때보다 위력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게다가 우리 가족문화의 맥락을 고려할 때 자녀의 명문대 진학으로 상징되는 성공과 출세는 엄마에겐 자신의 인생을 걸고 투자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자본’임이 분명하다.
그런 전일제 엄마 눈에 시간제 엄마는 치열한 입시전쟁에서 자기 주머니를 우선적으로 챙기는 이기적 엄마로 보이거나, 아니면 노력도 하지 않고 결실만 챙기려는 무임 승차자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세계 제일의 교육열을 자랑한다면서도, 정작 교육 철학도 교육 가치도 부재한 우리의 척박한 교육환경이 문제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잘 키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 대신, 어떻게 하면 ‘대치동 엄마를 따라잡을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인 상황에서, 건강한 모성과 건전한 부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나이브함의 소치일지도 모르겠다.

아빠들과의 공조체제 구축을
그래도 엄마와 자녀관계의 만족도는 엄마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할 때, 더불어 엄마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살아갈 때 가장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음을 기억하자. 나아가 자녀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엄마의 취업 여부 자체가 아니다. 누군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는 이가 있느냐 여부요,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배려해주고 민주적 관계를 유지해갈 때 자녀 또한 평화롭고 안정적인 인성을 구축해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정말 아이 키우기 무서워 아이 못 낳겠다는 ‘출산파업’시대에, 한편으론 시간제 엄마와 전일제 엄마의 화해 협력 노력을,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제 아빠들과의 현명한 공조체제 구축을 시도해봄이 어떨는지.
함 인 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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