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흥망성쇠/시리즈물/자동차 파편이 그룹해체로
4조 여신중 일부 빚 계열사 떠안아...주력 기업까지 매각 비운
지역내일
2000-09-25
(수정 2000-09-25 오전 10:17:09)
쌍용그룹의 그룹해체에 대한 당시 재계의 반응은 전혀 의외라며 지금도 그 충격을 떨구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재계순위 6위에 증권 정유 양회 리조트 건설 등 20여개 계열사
중 돈버는 업체의 수두룩한데다 기업의 이미지도 상위권을 마크하고 있어 그룹해체 비운의
현실을 절감하지 못했다. 재벌이 다 망해도 쌍용만은 추락하지 않을 것으로 국민의 두터운
신뢰를 받아온 터였기에 더욱 그랬다. 거리마다 달리는 쌍용스포츠카는 젊은이들의 자동차
소유욕구에 불을 댕겼고 여의도 굿모닝증권 의 매머드 건물은 쌍용그룹의 위용을 한껏 뽐내
고 있었다.
하지만 쌍용그룹의 재무구조를 따지고 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허실경영의 표본, 그 자체
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싶다. 확장의 과욕에서 비롯된 차입경영은 끝내 재벌해체를
선언해야 했는데 쌍용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업자득인 셈이었다.
김석원 회장은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미뤄가며 아버지인 창업주 고 김성
군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을 키우는 데 전생을 바친 전형적인 한국의 기업가이다. 그
러나 그의 경영철학은 오직 '확장, 확장'이었고 축소는 곧 실패로 간주할 만큼 사세확장에
경영전략을 짰다. 여기에 투여되는 자금마련 방식은 대부분 자체조달이 아닌 은행돈 끌어다
쓰기였다. 결과는 뻔했다. 이런 경영은 계열사중 하나만 쓰러져도 동반 위기에 몰리는 연쇄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계열사간 채무보증의 물고 물리는 관계는 빚더미 재벌로서 지탱할
재간이 없어서다.
쌍용그룹 해체비운의 또 다른 원인은 운이 따라주지 못한데서 찾을 수 있다. 남광토건과 쌍
용건설이 거래업체들의 부도파편을 정면에 맞아 동반 추락하는 고충을 겪는다. 이를 두고
쌍용그룹 한 관계자는 "당시 김회장의 사업열정과 달리 집안내분에 관련업체들의 부도파문
이 겹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고 전했다. 사업을 확장하면 그 분야의 업종이 공교롭게도 불
황에 직면하는 상황을 연출했다는 설명이다.
쌍용의 해체는 빚으로 얼룩진 자동차업종서 시발된다. 쌍용자동차는 대중보다 특수계층을
겨냥하는 바람에 시장점유율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기라성 같은 현대 대우 기아 3동차
3사와의 경쟁은 역부족이었다. 지난97년12월6일 대우그룹에 넘어갈 당시 쌍용자동차의 매
출은 1조4000여억원에 적자 2284억원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경제는 극도로 불황상황이었
다. 쌍용자동차의 총여신규모는 3조4000억원에 종업원만도 1만6000명에 이르는 거대기업이
었다.
쌍용자동차 인수실무팀에 종사했던 모 인사는 쌍용자동차를 이렇게 평가했다. "쌍용자동차
는 부실규모가 생각보다 심각했어요. 회계장부 분석에도 애로가 많았지요. 특히 정작 문제
는 적자규모가 눈덩이로 불어나고 있는데도 자생력을 배양할 특단의 조치에 대해 꿈도 못 꾸
고 있었어요. 종업원 수도 1만600명을 넘어서 도저히 회생할 비법이 없었어요. 사실상 억지
로 대우가 떠 안았지만 부실기업을 인수한 대우그룹이 스스로 함정을 파는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금난에 휘말린 쌍용자동차는 채권단에 추가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쌍용의
재무실태를 분석한 채권단은 "터무니없는 소리다"며 고개를 내저어 쌍용자동차는 새주인을
맞이했다.
자동차에서 촉발된 쌍용그룹의 계열사 타의적 잘라내기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쌍용의 자
존심인 양회와 알짜배기 기업 쌍용정유 지분까지 처분해야 하는 위기에 몰린다. 퇴출기업
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권이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회수하고 거래업체들마저 외상 거래를
'노'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말았다. 자동차를 매각하는 과정에
서 채무 1조4000억원을 쌍용그룹이 떠 안는 조건이었다. 이 빚더미는 쌍용그룹 해체의 결정
타가 됐다. 자동차업이 그룹을 함몰시키고 말았다. 삼성자동차가 삼성을 어려움으로 내몰고
대우자동차도 대우를 추락시킨 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 여파는 창업 20년에 연간 매출 2조1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는 석유판매업인 계열사 범아
석유가 지난98년6월 퇴출기업리스트에 오른 데다 웬만한 부동산을 처분한 뒤 부채를 상환해
도 부도설이 끝임없이 나돌도록 만들었다. 쌍용은 서울창동 소재 시멘트 공장과 제지공장
등 금싸라기 땅과 건물을 매각, 1조원의 채무를 갚았었다. 그런데도 시장은 쌍용의 위기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외면당해야 했다. 쌍용은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지난 98년 11월4일 특
단의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다. 사실상 재벌해체인 구조조정이 그것이다. 주력사업마저 포기
하고 안방격인 그룹의 사옥까지 팔기로 결정, 비장의 각오를 한다. (주)쌍용등 7개사만 남기
고 모두 매각, 빈껍대기만 남는 그룹으로 전략하기에 이르렀다. '자존심'과 '노른자' 계열기업
을 송두리째 처분키로 결정을 했다. 가혹한 현실이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모두 자멸하
느냐 아니면 빚을 처분해 재기를 노리느냐하는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금융권에서는 멀쩡한 기업마저 무너지게 만들고 마는 시장상황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불요불
급한 부동산이나 계열사 등 군더더기를 확실하게 포기하면서 다량의 현금을 확보해두는 방
법밖에 달리 비법이 없었다. 쌍용은 과거 영예를 탈환키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김석원
회장의 장남 지용씨(28)가 지난3월 분사한 (주)용평리조트의 이사에 등재돼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그룹 고위급 임원3명도 추가로 등재되어 있다. 재계는 지용씨가 그룹의
후계자로 등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재계순위 6위에 증권 정유 양회 리조트 건설 등 20여개 계열사
중 돈버는 업체의 수두룩한데다 기업의 이미지도 상위권을 마크하고 있어 그룹해체 비운의
현실을 절감하지 못했다. 재벌이 다 망해도 쌍용만은 추락하지 않을 것으로 국민의 두터운
신뢰를 받아온 터였기에 더욱 그랬다. 거리마다 달리는 쌍용스포츠카는 젊은이들의 자동차
소유욕구에 불을 댕겼고 여의도 굿모닝증권 의 매머드 건물은 쌍용그룹의 위용을 한껏 뽐내
고 있었다.
하지만 쌍용그룹의 재무구조를 따지고 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허실경영의 표본, 그 자체
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싶다. 확장의 과욕에서 비롯된 차입경영은 끝내 재벌해체를
선언해야 했는데 쌍용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업자득인 셈이었다.
김석원 회장은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미뤄가며 아버지인 창업주 고 김성
군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을 키우는 데 전생을 바친 전형적인 한국의 기업가이다. 그
러나 그의 경영철학은 오직 '확장, 확장'이었고 축소는 곧 실패로 간주할 만큼 사세확장에
경영전략을 짰다. 여기에 투여되는 자금마련 방식은 대부분 자체조달이 아닌 은행돈 끌어다
쓰기였다. 결과는 뻔했다. 이런 경영은 계열사중 하나만 쓰러져도 동반 위기에 몰리는 연쇄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계열사간 채무보증의 물고 물리는 관계는 빚더미 재벌로서 지탱할
재간이 없어서다.
쌍용그룹 해체비운의 또 다른 원인은 운이 따라주지 못한데서 찾을 수 있다. 남광토건과 쌍
용건설이 거래업체들의 부도파편을 정면에 맞아 동반 추락하는 고충을 겪는다. 이를 두고
쌍용그룹 한 관계자는 "당시 김회장의 사업열정과 달리 집안내분에 관련업체들의 부도파문
이 겹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고 전했다. 사업을 확장하면 그 분야의 업종이 공교롭게도 불
황에 직면하는 상황을 연출했다는 설명이다.
쌍용의 해체는 빚으로 얼룩진 자동차업종서 시발된다. 쌍용자동차는 대중보다 특수계층을
겨냥하는 바람에 시장점유율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기라성 같은 현대 대우 기아 3동차
3사와의 경쟁은 역부족이었다. 지난97년12월6일 대우그룹에 넘어갈 당시 쌍용자동차의 매
출은 1조4000여억원에 적자 2284억원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경제는 극도로 불황상황이었
다. 쌍용자동차의 총여신규모는 3조4000억원에 종업원만도 1만6000명에 이르는 거대기업이
었다.
쌍용자동차 인수실무팀에 종사했던 모 인사는 쌍용자동차를 이렇게 평가했다. "쌍용자동차
는 부실규모가 생각보다 심각했어요. 회계장부 분석에도 애로가 많았지요. 특히 정작 문제
는 적자규모가 눈덩이로 불어나고 있는데도 자생력을 배양할 특단의 조치에 대해 꿈도 못 꾸
고 있었어요. 종업원 수도 1만600명을 넘어서 도저히 회생할 비법이 없었어요. 사실상 억지
로 대우가 떠 안았지만 부실기업을 인수한 대우그룹이 스스로 함정을 파는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금난에 휘말린 쌍용자동차는 채권단에 추가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쌍용의
재무실태를 분석한 채권단은 "터무니없는 소리다"며 고개를 내저어 쌍용자동차는 새주인을
맞이했다.
자동차에서 촉발된 쌍용그룹의 계열사 타의적 잘라내기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쌍용의 자
존심인 양회와 알짜배기 기업 쌍용정유 지분까지 처분해야 하는 위기에 몰린다. 퇴출기업
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권이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회수하고 거래업체들마저 외상 거래를
'노'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말았다. 자동차를 매각하는 과정에
서 채무 1조4000억원을 쌍용그룹이 떠 안는 조건이었다. 이 빚더미는 쌍용그룹 해체의 결정
타가 됐다. 자동차업이 그룹을 함몰시키고 말았다. 삼성자동차가 삼성을 어려움으로 내몰고
대우자동차도 대우를 추락시킨 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 여파는 창업 20년에 연간 매출 2조1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는 석유판매업인 계열사 범아
석유가 지난98년6월 퇴출기업리스트에 오른 데다 웬만한 부동산을 처분한 뒤 부채를 상환해
도 부도설이 끝임없이 나돌도록 만들었다. 쌍용은 서울창동 소재 시멘트 공장과 제지공장
등 금싸라기 땅과 건물을 매각, 1조원의 채무를 갚았었다. 그런데도 시장은 쌍용의 위기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외면당해야 했다. 쌍용은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지난 98년 11월4일 특
단의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다. 사실상 재벌해체인 구조조정이 그것이다. 주력사업마저 포기
하고 안방격인 그룹의 사옥까지 팔기로 결정, 비장의 각오를 한다. (주)쌍용등 7개사만 남기
고 모두 매각, 빈껍대기만 남는 그룹으로 전략하기에 이르렀다. '자존심'과 '노른자' 계열기업
을 송두리째 처분키로 결정을 했다. 가혹한 현실이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모두 자멸하
느냐 아니면 빚을 처분해 재기를 노리느냐하는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금융권에서는 멀쩡한 기업마저 무너지게 만들고 마는 시장상황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불요불
급한 부동산이나 계열사 등 군더더기를 확실하게 포기하면서 다량의 현금을 확보해두는 방
법밖에 달리 비법이 없었다. 쌍용은 과거 영예를 탈환키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김석원
회장의 장남 지용씨(28)가 지난3월 분사한 (주)용평리조트의 이사에 등재돼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그룹 고위급 임원3명도 추가로 등재되어 있다. 재계는 지용씨가 그룹의
후계자로 등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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