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우리곁으로 성큼 다가섰다

지역내일 2005-10-31
“지금 비행기는 북한 영공으로 진입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오른쪽에 보이는 곳이 황해도 장산곶입니다.”
133명의 평양 참관단을 태운 대한항공 전세기 KE9815편 기장은 백사장으로 유명한 장산곶을 소개하며 비행기가 ‘가상의 선’인 남북 경계를 넘었음을 밝혔다. 사람들이 창밖 풍경을 바라보느라 부산을 떨었다. 3박4일의 평양 관람이 시작됐다.
평양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더니 개성에 이어 평양도 우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백두산 관광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관광공사는 여행업계, 학계, 정부부처 관계자 및 기자 등 133명으로 ‘평양 방문단’을 꾸리고 지난 22일부터 4일간 평양 답사를 다녀왔다. ‘답사’ 명목이었지만 여행업계에서 참가한 사람들은 평양관광의 상품성을, 기업체 사람들은 대북 투자 가능성을 타진하는 자리였다.
출발직전 인천공항에서 참관단들은 기대반 걱정반의 모습이었다. 전기사정이 안좋아 밤이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이라면서 노트북이나 디지털카메라 충전기를 들고 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평양 호텔 수준이 70년대 여관만큼도 안된다’는 얘기를 듣고 이불을 싸온 사람도 있었다. 물론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충전기를 챙기지 않은 사람도, 이불을 챙겨온 사람도 모두 후회했다.
남북정상이 만나고, 올림픽에 공동입장하고, 운동경기에서 우리 민족이 이기라고 함께 응원하면서 남북이 어느덧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아직 평양에, 북한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1. 평양, 고조선·고구려의 왕도
신안공항으로 내려서는 비행기 창밖으로는 추수가 끝난 들녘이 펼쳐져 있었다. 어느해보다 풍년이었다는 말을 증명하듯 쌓아놓은 볏단도 풍성하다. 제주공항보다 작아보이는 신안공항에서 평양시내로 들어서는 길에는 벌써부터 보리밭이 푸른색을 띠고 있다. 금수산기념궁전부터 평양시내다. 노랗게 물들고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 사이로 김일성종합대학과 4·25문화회관을 거쳐 개선문, 인민대학습당, 제1백화점 및 평양역을 지나 숙소인 양각도호텔에 도착했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 두툼한 옷차림이지만 거리에는 사람들도 많고 활기가 있었다. “평양은 공원속 도시입니다. 도시속 공원이 아니라”라는 안내원 선생의 말처럼 대동강·보통강가 뿐 아니라 거리 곳곳에 수삼나무, 포플러 등 나무들과 공원이 많았다.
평양은 고조선 왕검성이 있던 곳. 고구려시대 수도이기도 한 곳이다. 단군릉과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릉도 평양에 있다. 고구려는 수도를 옮길때마다 시조의 묘도 옮겼다고 한다. 평양 동명왕릉은 장수왕이 427년 평양으로 천도하며 함께 옮겨온 것이라고. 주변 16기 왕릉들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동명왕릉 앞에는 동명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정릉사가 있다. 동명왕릉 주변 소나무숲은 또다른 볼거리. 600여년전 제주도에서 옮겨와 심었다고 한다. 왕릉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는 원시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물 10만여점이 19개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돼 있다. 특히 교과서에서만 봐오던 고구려무덤벽화와 세계최초 금속활자, 금속제 측우기가 볼거리다. 고구려·발해 유적이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백제·신라시대의 유물전시관은 초라할 정도로 볼것이 없다. 분단의 현실은 여기에도 있었다. 한 관람자가 “우리 국립중앙박물관과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합치면 완전한 역사가 될텐데”라는 말을 하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2. 묘향산에는 향기가 있다
묘향산 입구 보현사. 조계문을 넘어 경내로 들어서면 그윽한 향이 먼저 반긴다. 천리향 냄새다. 묘향산은 이름처럼 향기로 먼저 등산객에게 인사하는 산이다.
원래 24채의 건물과 탑들로 이뤄져 있던 고래시대 고찰 보현사는 청천강 이북지방 불교 전파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14채의 건물과 수천여점의 유물이 파괴됐다고.
첫 출입문인 조계문과 해탈문, 천왕문을 거쳐 대웅전에 들어서는 길에는 4각9층탑과 8각13층탑이 나와 반긴다. 4각9층탑은 탑신 안에 다보부처를 모셨다고 해 다보탑이라고도 불린다. 보현사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와 사명당, 처영의 탱화가 모셔져 있는 수충사도 있다. 수충사 옆에는 팔만대장경 판본과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심경 영인본이 있는 팔만대장경 보관고가 있다. 북측 안내원은 한국전쟁 당시 이 유물들을 묘향산 비로봉 밑 금강암에 옮겨놓아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전했다.
묘향산 등반코스는 크게 상원동, 만폭동, 천태동, 비로봉, 칠성동 다섯 개. 참관단은 이중 만폭동 길을 택했다. 크고작은 폭포가 많다고 만폭동이다. 조금 오르니 작은 폭포 하나가 나왔다. 서곡폭포다. 만폭동 폭포의 시작을 알린다 해서 서곡폭포라 불린다. 이어 하무릉폭포와 무릉폭포가 보인다. 무릉폭포 위 ‘무릉소’에는 맑은 물 속으로 버들치가 헤엄치는 모습도 보인다. 이어 은선폭포, 유선폭포, 은정폭포, 비선폭포 등 폭포가 줄을 이어 자태를 자랑한다. 폭포의 이름따라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다가 묘향산 총각을 만나 숨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맨 위 9층폭포까지 폭포의 향연은 3㎞에 걸쳐 펼쳐진다.
유선폭포 위 구름다리를 건너 잠시 땀을 식힐 겸 멀리 앞을 바라보니 산등성이에 우뚝 솟은 바위가 하나 있다. 천주석이다. 옛날 하늘에 구멍이 뚫려 45일간 비가 왔는데, 한 총각이 천주석으로 하늘 구멍을 막아 비가 멈췄다고 전해진다. 동행한 북측 안내원 한명이 폭포물을 들고간 물병에 담아 마신다. 그만큼 깨끗하다. 금강산이 원경이 아름다운 산이라면 묘향산은 근경이 아름답다. 바위산과 함께 주변 단풍과 숲, 깨끗한 물과 물속 버들치 등을 보며 등산하다 보니 글자 그대로 ‘묘한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3. 평양 자랑거리는 역시 사람
평양참관단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평양사람들과 각종 공연을 꼽았다. 특히 아리랑공연을 잊지 못하는 듯했다. 참가자중 한사람은 “아리랑공연은 전세계를 통틀어 평양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2만여명의 중학생들이 천변만화로 보여주는 카드섹션은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라고 소회했다. 사람들은 평양공항에서 아리랑공연 동영상 씨디를 한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지 여부를 묻기도 했다.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5·1운동장’에서 열린 아리랑공연은 다섯 살 유치원생에서부터 대학생까지 연인원 십만여명이 참가한다고 하는 초대형 집체공연. 학생들은 세달에 걸쳐 방과후 연습을 통해 공연준비를 했다고 한다.
평양교예극장에서는 서커스공연을 볼 수 있다.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보이는 마상기예, 스케이트, 곰과 함께하는 공연 등을 보며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이따금씩 아찔한 공중묘기를 보면 탄성이 절로 나기도 한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7살부터 17살까지 북한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방과후 예체능교육장이다. 평양에 이같은 대형 예체능교육장이 두곳 있다고. 여기에서 학생들은 바둑, 수영, 체조, 각종 구기종목은 물론 악기연주, 그림, 노래 등을 배운다. 2000여석 규모의 극장에서 학생들이 참관단들을 위해 보인 공연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수준급이다.
인민대학습당에서는 나이어린 학생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공부를 하는 북한사람들을 직접 볼 수 있다. 3000여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철이어서 그런지 평양시내 곳곳에서는 신혼부부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네 신혼부부들은 주로 경치가 좋은 곳에서 결혼사진을 찍지만 이들은 주체탑, 만경대고향집, 개선문 등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에서 결혼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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