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난 게 아니라 업무성격이 달라진 것”

임금피크제 받아들인 모 은행 김성모 부장

지역내일 2005-10-28
일자리나누기의 한 형태인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금융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 직원 9명으로 시작했던 임금피크제는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이 동참하면서 현재 3개 금융기관, 120명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이들 중 대부분은 해당 기관에서 지점장이나 부장 등 책임자로 근무하다 실무지원을 담당하고 있고, 일부는 후배 지점장 밑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연공서열이 강조되고, 직급과 연봉을 낮추어 근무하는 것은 수치를 여기는 우리나라 기업 풍토에서 임금피크제가 확산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업무는 그대로, 급여는 80% 수준 = 최근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인 모 은행 부장 김성모(56 가명)씨. 같은 은행에서 28년째 근무한 그는 지난 9월부터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김씨는 자신이 퇴직 전부터 맡고 있던 업무를 신분만 바뀐 상태에서 계속 맡고 있다. 월급은 퇴직 직전에 받던 금액의 80%수준으로 정해졌다. 김씨의 월급은 앞으로 3년 동안 매년 조금씩 하향 조정된다.
“은행을 그만둔 동기들 중에 절반은 사장이지만 나머지는 실업자다.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회사를 나가서 창업할 자신이 없었다.”
물론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두 아들의 결혼문제도 작용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의 직업은 결혼할 때 많은 영향을 미친다.
대학 졸업후 고시를 준비하던 김씨는 지난 77년 대학동기들보다 늦게 이 은행에 입사했다. 김씨는 지난 30여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전직을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은행생활 30여년 하면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 이곳이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씨도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가족과 주위의 시선도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김씨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친구들한테 고민을 이야기했는데 모두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라고 하더라. 아내와 자식들도 이해를 해줬다.”
김씨는 현재 지원업무인 여신심사업무를 맡고 있다.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행정부장직을 맡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은행에서 배운 것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여신심사나 프로젝트 지원, 각 부서 전문위원 등 다양한 형태로 은행업무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김씨는 정년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나이 때문에 밀려난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만 늘어난다. 계약직으로 바뀌는 것은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김씨도 나이를 기준으로 한 임금피크제도는 앞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이를 기준으로 할 경우 일은 쉬워도 조직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가 있다.”
김씨는 선진국처럼 우리 금융기관도 한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양성을 통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을 나이에 상관없이 근무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개인금융서비스(PB), 여신업무 등 각자 잘하는 분야에서 전문가를 육성하고 한다면 나이에 따라 획일적으로 자르는 현상은 극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효율성 고려한 제도보완 필요 = 김씨는 최근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퇴직후 직업 선택의 기회를 넓히기 위해서다.
“4개 외국어 정도 능통하면 퇴직후에 먹고사는 문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위에 보면 법정관리인이나 부동산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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