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문화재단' 설립한다

청각장애 딛고 불타는 예술혼 발휘 … 내달 중 구체화

지역내일 2001-01-25
한국화단 거목 김기창 화백 타계


한국화단의 거목으로 평가받던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화백이 지난 23일 타계, 우리 나
라 문화예술계에 안타까움 목소리가 드높은 가운데 '운보 문화재단'이 내달 설립될 전망이
다.
운보 문화재단설립추진위원회(재단설립추진위)는 25일 '지난해 4월부터 추진한 운보 문화재
단 설립작업이 대부분 마무리됐다'며 '내달 초 문화관광부에 재단 설립 서류를 접수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구상 시인,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 이구열 미술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재단설립추진위는
재단이 설립되면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학생미술실기대회와 신진작가가 참여하는
운보 미술대상전을 각각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또 운보와 부인 박래현 부부 추모전도 구상
하고 있다.

◇18살 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운보의 타계가 이처럼 우리 나라 문화예술계에 영향을 몰
고 온 이유는 후천성 청각 장애를 딛고 불타는 예술혼으로 독특한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구
축했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화가', '움직이는 인간 박물관', '의지의 작가', '정열의 뭉치' 등은 모두 운보
를 지칭한 말이었다.
1914년 서울에서 태어나 7살 때 장티프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장애가 된 운보는 17살 때 이
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숙에 들어가 이듬해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판상도무'
로 입선,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4년 연속 선전에서 특선을 차지해 국전 추천작가가 됐고, 81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의 생애에 <오수>, <군마도>, <탈춤>, <군작>, <>
> 등 1만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바보란 덜된 것이며, 완성된 예술은 없다"=무엇보다 그의 삶과 예술에 일대 전기가 된
것은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과의 결혼이다. 필담으로 의사소통에 한계를 느낀 운보는 구
화법을 배웠고, 수차례 부부전을 갖는 등 서로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76년 과로로 우향이 타계하자 아내를 기려 성북동에 운향미술관을 건립했고, <>
의 생애>, <심상> 연작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민화풍 산수화인 <바보산수>는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에 비할 만큼 큰 업적
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보란 덜된 것이며, 예술은 끝이 없으니 완성된 예술이란 없다. 그래
서 바보산수를 그린다"던 운보의 말은 금언(金言)으로 전해져 오기도 했다.

◇장애인 권익옹호에 앞장=운보는 또 장애인의 대부라는 평가도 함께 받아왔다.
일생을 '귀먹고 말 못하는' 고통속에 살아온 운보는 79년 '한국농아복지회' 초대회장에 취임,
이들의 권익옹호에 앞장서 왔다.
84년에는 충북 청원에 '운보의 집'을 세우고 운보공방과 운향미술관, 도예전시관 등을 조성
했다. 운보공방에서는 농아들에게 도자기 기술을 가르쳐 자립기반을 닦도록 하기도 했다.

◇27일 장례식후 청원으로=운보 장례식은 27일 오전 7시 빈소가 마련된 삼성의료원을 떠나
운보가 수 십 년을 지냈던 성북동 자택을 둘러본 후 명동성당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김수
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미사가 진행되고 예술인장이 치뤄진다.
이어 청원으로 내려가 76년 타계한 아내 박래현 옆에 묻힐 예정이다.
/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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