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도 정치다’ 여성 국회의원들의 패션정치(문패)

‘흑백시대’에서 ‘칼라시대’로 개성만발

지역내일 2005-09-13 (수정 2005-09-13 오전 8:59:41)
15대 9명, 16대 16명, 17대 39명.
비교적 최근의 여성의원 수의 변화 추이다. 17대 국회 39명이라는 숫자는 여성 유권자가 절반인 현실을 보면 대표성면에서 그리 높은 것은 아니지만 전체 국회의원 중 두자릿수(13%)의 비율을 차지하게 된 것은 처음이다. 이런 비약적인 여성 의원들의 숫자 증가는 남성성이라는 반쪽 날개로 날던 국회에 여성성이라는 다른 한쪽 날개를 미약하나마 달아주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날개를 달아줬다면 바로 ‘패션의 날개’다. 여성 의원들은 그동안 칙칙한 남색 정장만이 유일한 드레스코드였던 국회에 개성을 섞은 패션코드를 심어주었다.

◆처음엔 ‘남성성’ 강조한 바지패션이 파격 =
가장 최근에 패션으로 눈길을 끈 여성 의원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다. 박 대표는 평상시에 약간 짧은 듯한 단정한 자켓에 품이 넓은 긴 치마를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지난 7일 노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하면서 이른바 ‘전투복’ 차림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우아한 치마정장에서 약간 당찬 느낌의 바지정장으로 갈아입은 것 뿐이었지만 여성 정치인의 패션이 ‘정치 행위’로 인식되는 것 자체가 여성 정치인의 패션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렇듯 여성 정치인의 패션이 일종의 정치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굳이 기원을 따지자면 15대 정도부터라고 한다. 이 때 전까지만 해도 여성 의원들은 수수한 치마정장을 입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이는 패션이라기보다 ‘교복’의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15대 국회 때 국회에 입성한 여성의원들은 국회사무처로부터 여성의원들의 경우 국회 선서를 할 때 치마정장을 권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러나 일부 여성의원들은 일부러 바지정장을 골라 입었고 이는 오히려 파격으로 인식됐다. 이 사건은 바지를 입음으로서 역설적으로 ‘여성’이라는 것을 보인 사건으로 회자됐다.
16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성별은 여성이어도 ‘중성’의 느낌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인정받는 풍토여서 여성 의원들의 패션은 그리 꽃을 피우진 못했다. 예를 들어 여성 의원이면서도 여성의원 취급받는 것을 싫어했던 추미애 의원의 경우에는 공개적으로 “여성으로 대하지 말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추 의원은 여성의원들만이 모이는 자리에 별로 열의를 보이지 않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여성의원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7대 국회 들어와서는 이제 여성 의원들은 자신들이 여성임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여성성으로 승부한다. 임기 내에 결혼하는 여성 국회의원이 생겼다거나 재혼하는 여성의원까지 있다는 보도도 어떤 측면에서는 그런 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패션이 다양해진 것도 바로 이런 여성 의원들의 마인드 변화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결국 브로치 패션으로 유명했던 미국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나 지적인 패션으로 대통령 영부인의 패션코드의 개념을 바꿔놓았던 힐러리 클린턴 여사처럼 여성 정치인의 패션이 그 자체로 정치로 받아들여지는 때가 된 것이다.

◆개성따라 천차만별 =
오랫동안 국회에서 여성의원들을 봐온 이계경 의원실의 이 건 보좌관은 “16대 때까지만 해도 무채색 정장 위주로만 입던 여성의원들이 이제는 굉장히 칼라풀한 원색의 옷을 입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면서 “패션 그 자체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시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15, 16대 때까지는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는 상황이었고, 17대에 와서는 아직도 숫자는 태부족이지만 이제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는 차별화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됐다는 것도 한 요인이다.
그래서인지 의원 성격에 따라 입고 다니는 옷도 다르다. 정당 대표로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여성 정치인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옷 자체가 그를 말해준다고 할 정도로 ‘박근혜식’ 패션이 따로 있다. 특히 박 대표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그는 바지를 주문할 때 보통 다림질로 잡아야만 하는 바지 가운데 주름에 박음질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고 한다. 그 시간도 아끼기 위해서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또 한 명의 여성의원은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다. 보통 국회의원 정도 되면 유명 디자이너나 명품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전 의원은 동대문에서 옷감을 끊어서 아는 집에서 옷을 맞춘다. 맞춤 값이 있긴 하지만 워낙 천을 싼 값게 끊기 때문에 왠만한 중년여성 정장 값의 반도 안된다고 한다.
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17대 여성 의원들 중 패션 리더 중의 한 명이다. 여성위에서 손 의원의 패션을 가까이서 봐온 한 여성 보좌관은 “어느 때건 항상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와 상황에 맞으면서 은근히 과감한 패션을 추구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정당따라 분위기 달라 =
열린우리당 여성 의원들 중에는 편안한 패션을 추구하는 여성 의원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의 경우 보통 학생을 연상시키는 단정한 정장차림을 하지만, 가끔씩은 핸드백 대신 백팩을 멘 차림으로 출근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은 전담 코디네이터까지 고용하기도 해보고, 협찬도 받아보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의원 중 한명이다. 김 의원은 당직자에서 의원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세련된 패션도 그 변신에 큰 몫
반면에 여성미를 보여주기 보다는 ‘엄숙주의’를 느끼게 하는 의원들도 있다. 열린우리당의 김선미 의원과 한나라당의 나경원 의원은 고급스런 정장차림을 고수하면서 나름대로 패션리더 축에 끼지만 어느 정도 틀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 단정함을 유지한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전형적인 커리어우먼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이 의원은 총선 당시 여성정치인으로서 거듭 나기 위햇 코디네이터들의 도움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온통 튀는 색깔의 치마정장만 권유하는 통에 포기하고 이전에 입던 옷으로 돌아간 케이스다.
이색패션을 고수하는 의원들도 빼놓을수 없다. 다양한 생활한복 패션을 선보인 바 있는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 무용가 출신답게 가끔씩 히피룩을 선보이는 열린우리당 강혜숙 의원 등이 있다.
민노당 여성 의원 중에선 심상정 의원이 패션리더격이다. 모두 평소에 편안한 바지에 자켓 정도로만 생활했던 터라 등원 후에 심 의원이 입고 나온 은색에 가까운 실크치마정장은 민노당 내에서도 꽤나 회자됐다. 심 의원이 갖고 있던 날카로운 이미지를 중화해줬다는 평이다. 최순영 이영순 현애자 의원 등은 모두 차분한 색깔의 바지정장을 주로 입는 편이다.
알록달록 패션은 한나라당 의원들에 많은 편. 김영숙 의원과 안명옥 의원이 주인공이다. 그 중 김 의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과감한 색상과 디자인을 선택해서 항상 주목받는 의원 중의 한명이기도 하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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