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규석씨와 내일신문 인연은 1993년 창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현대정공 노동조합에서 교육부장을 맡고 있던 양씨는 ‘세상을 바꾸자’는 꿈을 안고 내일신문과 손을 잡았다. 창원 지역에서 내일신문 창간을 준비하던 활동가들과 의기투합한 것이다.
노동운동가로 빠듯한 살림을 무릅쓰고 내일신문 주식을 샀던 양씨는 지금도 창간 대회의 열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93년 9월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서강대에서 열렸던 창간대회는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는 내일신문에서 보수 한푼 받지 않았지만 배포사원 역할도 자원했다. 매주 당시 주간 내일신문 100부 내외를 현장에 배포하면서 기사를 놓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양씨는 “군부독재를 거쳐나오던 시기, 내일신문이 가졌던 신선한 시각 때문에 많은 노조 사람들이 기사를 정독하고 돌려보기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지금도 내일신문이라고 부르지 않고 ‘우리 내일신문’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지금 내일신문을 바라보는 양씨의 시선을 어떨까.
그는 “신문에 대한 두터운 믿음은 여전하지만 너무 정치·경제에 집중하니까 일반 독자와 직접 맞닿는 부분이 적고 ‘딱딱한 신문’이라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창간 때와 마찬가지로 내일신문 기사에서 세상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지만 사회 다른 분야의 움직임을 연관지어 판단하는 일은 만만찮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주주독자들이 공통되게 지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양씨는 “다른 신문들이 유행따라, 사회적 분위기 따라 그때그때 흔들리지만 내일신문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신뢰가 있다”면서도 “독자가 기사를 실생활과 연결짓기 힘들어 많은 기사량에도 불구하고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스포츠신문처럼 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며 “사회가 복잡해지는 만큼 추세를 빨리 읽고 기사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잡다한 정보를 많이 싣기보다 사회의 흐름이 보이는 굵직한 기사를 눈길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으로 실어달라는 주문이다. 양씨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지방자치와 교육 등 시사성 있는 주제들이 많다. 내일신문 스스로도 지향하고 있듯이 해설·분석기사를 보강하되 다루는 범위를 확대하라는 것이다.
건강·재테크를 강조하는 세태와는 달리 양씨는 “신문에서 지방화, 교육 문제, 국제 정세 변화 등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기사들이 많아야 한다”면서 “이것은 신문의 폭넓은 대중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씨는 그런 기사를 ‘써먹을 수 있는 기사’들이라고 표현했다.
1987년 이후 노조 조직부장, 교육부장 등을 거치며 노동운동에 몰두했던 양규석씨.
살고 있는 아파트 자치회 활동과 지방자치위원을 통해 양씨의 활동폭은 더 커졌다. 지금은 (주)로템의 생산 현장에서 조장을 맡아 직함은 줄었지만 양씨의 관심사는 오히려 회사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노동운동가로 빠듯한 살림을 무릅쓰고 내일신문 주식을 샀던 양씨는 지금도 창간 대회의 열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93년 9월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서강대에서 열렸던 창간대회는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는 내일신문에서 보수 한푼 받지 않았지만 배포사원 역할도 자원했다. 매주 당시 주간 내일신문 100부 내외를 현장에 배포하면서 기사를 놓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양씨는 “군부독재를 거쳐나오던 시기, 내일신문이 가졌던 신선한 시각 때문에 많은 노조 사람들이 기사를 정독하고 돌려보기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지금도 내일신문이라고 부르지 않고 ‘우리 내일신문’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지금 내일신문을 바라보는 양씨의 시선을 어떨까.
그는 “신문에 대한 두터운 믿음은 여전하지만 너무 정치·경제에 집중하니까 일반 독자와 직접 맞닿는 부분이 적고 ‘딱딱한 신문’이라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창간 때와 마찬가지로 내일신문 기사에서 세상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지만 사회 다른 분야의 움직임을 연관지어 판단하는 일은 만만찮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주주독자들이 공통되게 지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양씨는 “다른 신문들이 유행따라, 사회적 분위기 따라 그때그때 흔들리지만 내일신문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신뢰가 있다”면서도 “독자가 기사를 실생활과 연결짓기 힘들어 많은 기사량에도 불구하고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스포츠신문처럼 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며 “사회가 복잡해지는 만큼 추세를 빨리 읽고 기사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잡다한 정보를 많이 싣기보다 사회의 흐름이 보이는 굵직한 기사를 눈길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으로 실어달라는 주문이다. 양씨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지방자치와 교육 등 시사성 있는 주제들이 많다. 내일신문 스스로도 지향하고 있듯이 해설·분석기사를 보강하되 다루는 범위를 확대하라는 것이다.
건강·재테크를 강조하는 세태와는 달리 양씨는 “신문에서 지방화, 교육 문제, 국제 정세 변화 등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기사들이 많아야 한다”면서 “이것은 신문의 폭넓은 대중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씨는 그런 기사를 ‘써먹을 수 있는 기사’들이라고 표현했다.
1987년 이후 노조 조직부장, 교육부장 등을 거치며 노동운동에 몰두했던 양규석씨.
살고 있는 아파트 자치회 활동과 지방자치위원을 통해 양씨의 활동폭은 더 커졌다. 지금은 (주)로템의 생산 현장에서 조장을 맡아 직함은 줄었지만 양씨의 관심사는 오히려 회사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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