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싼 보육시설 확충해야
경 규 은 생명보험협회 홍보부 대리
이지러지게 흩날리던 첫눈을 본 지도 꽤 되었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 11월 한 달 동안 서울 기온이 한번도 영하로 떨어지지도 않았고, 겨울도 한 달 이상 짧아질 거라는 보도도 있는데, 갈수록 겨울이야기는 추억이 되어 가는가 보다.
나는 결혼 9년차로 맞벌이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인 8살 딸과 5살 아들을 두고 있다. 회사에서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데 평소 출근시간이 이르고 귀가시간도 늦은 편이다. 사정이 이런지라 미안하게도 애들 양육은 전적으로 엄마 몫이 되어 왔다. 집사람은 다행히도 중학교 영어교사라 내가 힘든 가운데에도 직장일과 부모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큰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불거지게 되었다.
전에는 집사람이 합숙연수라도 갈라치면 시골의 어머니에게 맡기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학교를 안 보낼 수도 없고 그 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은 내가 그 역할을 해야 됐다.
지난 3월 일주일 연수 때는 여름휴가를 미리 당기고 어찌어찌해서 잘 넘겼다. 그리고 지난 7월 집사람에게 한달 짜리 캐나다 연수가 나왔을 때는 앞이 캄캄했다.
호기 있게 여기 일은 다 잊고 잘 다녀오라며 집사람을 떠나 보냈지만 사연 많은 한 달을 보냈었다. 말 그대로 아침에 눈떠서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전쟁이 따로 없었다. 다행히도 평소의 출근시간을 30분 정도 늦추고 대중없던 퇴근시간도 저녁 6시로 맞추니 어떻게든 아이들 뒷바라지할 수 있는 시간은 확보되었다. 기특하게도 8살짜리 큰딸이 동생 유치원 버스 태워주는 일부터 나중에 집에 데려오는 일까지 맡아 주어 큰 힘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힘이 들고 몸은 피곤했지만 많은 걸 생각하고 반성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애들 엄마가 직장 다니랴 애들 뒤치닥거리하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할 수 있게도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주말에 가사일 돕는 정도를 가지고 무척이나 생색내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물론 그 중에도 가장 큰 수확은 애들이 아빠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빠가 제일 좋다는 말을 연발하고 아빠 옆에서 자려고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면 그게 제일 큰 보람이자 행복이었다.
이번 달에도 집사람이 2박3일 연수가 또 있다. 다행히도 휴가가 남아 있어 그걸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나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할까”하고. 딱히 애들을 맡아줄 사람도 없는 경우, 보육시설도 정해진 시각에는 문을 닫으니, 부모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안전하고도 싼 보육시설이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워낙 국가적으로 시급한 일이 많아서 이런 건 소소한 문제일까.
경 규 은 생명보험협회 홍보부 대리
이지러지게 흩날리던 첫눈을 본 지도 꽤 되었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 11월 한 달 동안 서울 기온이 한번도 영하로 떨어지지도 않았고, 겨울도 한 달 이상 짧아질 거라는 보도도 있는데, 갈수록 겨울이야기는 추억이 되어 가는가 보다.
나는 결혼 9년차로 맞벌이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인 8살 딸과 5살 아들을 두고 있다. 회사에서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데 평소 출근시간이 이르고 귀가시간도 늦은 편이다. 사정이 이런지라 미안하게도 애들 양육은 전적으로 엄마 몫이 되어 왔다. 집사람은 다행히도 중학교 영어교사라 내가 힘든 가운데에도 직장일과 부모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큰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불거지게 되었다.
전에는 집사람이 합숙연수라도 갈라치면 시골의 어머니에게 맡기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학교를 안 보낼 수도 없고 그 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은 내가 그 역할을 해야 됐다.
지난 3월 일주일 연수 때는 여름휴가를 미리 당기고 어찌어찌해서 잘 넘겼다. 그리고 지난 7월 집사람에게 한달 짜리 캐나다 연수가 나왔을 때는 앞이 캄캄했다.
호기 있게 여기 일은 다 잊고 잘 다녀오라며 집사람을 떠나 보냈지만 사연 많은 한 달을 보냈었다. 말 그대로 아침에 눈떠서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전쟁이 따로 없었다. 다행히도 평소의 출근시간을 30분 정도 늦추고 대중없던 퇴근시간도 저녁 6시로 맞추니 어떻게든 아이들 뒷바라지할 수 있는 시간은 확보되었다. 기특하게도 8살짜리 큰딸이 동생 유치원 버스 태워주는 일부터 나중에 집에 데려오는 일까지 맡아 주어 큰 힘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힘이 들고 몸은 피곤했지만 많은 걸 생각하고 반성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애들 엄마가 직장 다니랴 애들 뒤치닥거리하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할 수 있게도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주말에 가사일 돕는 정도를 가지고 무척이나 생색내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물론 그 중에도 가장 큰 수확은 애들이 아빠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빠가 제일 좋다는 말을 연발하고 아빠 옆에서 자려고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면 그게 제일 큰 보람이자 행복이었다.
이번 달에도 집사람이 2박3일 연수가 또 있다. 다행히도 휴가가 남아 있어 그걸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나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할까”하고. 딱히 애들을 맡아줄 사람도 없는 경우, 보육시설도 정해진 시각에는 문을 닫으니, 부모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안전하고도 싼 보육시설이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워낙 국가적으로 시급한 일이 많아서 이런 건 소소한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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