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일꿈>A급이 되고픈 B급좌파의 꿈(박용진 2004.09.20)

지역내일 2004-09-20
A급이 되고픈 B급좌파의 꿈
박 용 진 민주노동당 대변인

얼마전 국회연락관 직책을 가진 국정원 직원이 찾아왔다. 민주노동당과 일정한 연락관계를 가져야 할텐데 외부로 드러나는 일을 하는 사람중에 나를 통해 경로와 방식을 공식적으로 지정받고자 하는 것 같았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이라면 국정원에게 모두들 가질만한 거부감과 찜찜함이 나라고 없지는 않았지만 만남 자체에 부담을 갖지 않았다. 원내에 진출한 제3당으로 성장했으니 일정한 관계가 필요할 듯 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관계를 어느 부서를 통해 어떤 절차로 갖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마친 뒤 나는 내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들었던 이야기 하나를 확인해 보았다.
국정원의 이전 이름인 당시 안기부에는 이른바 ‘(학생)운동권분류법’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 등급 기준이 다음과 같다.(그것도 남성기준이었다.)
먼저, 대학에 막 들어와 데모에 휩쓸리는 놈.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경우다. 그저 그런 D급이다. 둘째, 군대다녀와서도 데모한다? 이거 쫌 건전시민 될 싹수가 노란놈이다. C급인데 주로 이런 놈은 졸업하고도 데모하러 다니기 일쑤다. 셋째, 장가가서도 운동이랍시고 쏘다니며 데모를 한다. … 이건 좀더 심각해진 B급 운동권이다. 그리고 A급. 아이를 낳고 나서도 눈깜짝하지 않고 계속 데모하고 운동하는 놈은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을 A급 운동권이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반드시 잡아들여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국정원 직원은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그런 분류법은 없지만 참 그럴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처럼 무섭게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고 결정짓는 것도 없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6개월만에 감옥으로 끌려가서 무려 25개월을 살고 나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바쁜 생활때문인지 나는 결혼하고 만 4년이 되도록 “B급좌파”였다. 조급하지는 않았지만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아이들이 더 예뻐 보이기 시작할 무렵, 엊그제 아내가 임신사실을 말해주었다.
내가 너무나 기쁘고 고마운 것은 내가 A급 좌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학생운동 시절 이후 서로 공유할 것 없이 지내오던 나와 아내 사이에 함께 공유할 우주만큼 커다란 의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나온 뒤 늘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하는 시간이 없어 미안한 마음뿐이었던 아내와 함께 이야기 할 ‘의미와 그 무엇’이 생긴 것이다.
당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일을 평생토록 해 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사람으로 진짜 A급좌파로 살아가고 싶다. 단지 ‘아이낳고도 정신못차리고 운동한다’는 무책임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 당에 모두 충실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추석 둥근달에 빌어보는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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