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이 아름답다]② 금광테크의 원칙주의자 노총각 윤경호 씨

“힘들어도 잘 참고, 한번 맘먹은 것은 포기하지 않아요”

지역내일 2004-11-24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에 자리한 금광테크는 철골 가공 기계를 제작하는, 직원 30명 규모의 작은 회사이다. 주로 일본의 중고기계를 들여와 수리해서 판매하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가스절단기를 자체 개발했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석포리는 넓은 갯벌 너머로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곳이다. 화성시에서 공단으로 조성한 곳인 듯, 확 트인 터 위에 새로 지은 말끔한 공장들이 아직은 드문드문 서 있다. 금광테크도 작년에 시흥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윤경호씨가 금광테크에 입사한 것은 작년 11월이다. 경기직업전문학교 전기과를 마친 뒤 이곳 저곳 일곱 군데나 원서를 냈으나 모두 실패하고 여덟번째만에 금광테크에 채용되었다. 취직이 어려웠던 것은 경호씨의 나이와 학력 때문이다. 경호씨는 94년에 전남대 사회교육과를 졸업했고, 올해 서른일곱이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생산직에, 그것도 서른 중반에 말단 사원으로 취직을 하겠다니, 뽑는 사람들이 ‘제대로 다닐까?’ 못미더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경호씨를 보면 적지도 많지도 않게 숙제를 내주고, 내 준 숙제는 반드시 검사하고, 안 해 온 사람은 꼭 다시 해 오게 하는 그런 선생님이 떠오른다. 실제로도 경호씨는 교사가 되고 싶어 사범대를 갔다. 그러나 사회과는 수업시수가 적어 임용 기회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졸업 뒤 1, 2년간은 저도 남들처럼 생각했어요. 대학 나온 놈이 아무 일이나 할 수 있나…그런 생각요. 면접도 참 많이 봤지만, 사범대 출신을 싫어하는지 번번이 떨어지고. 그러다 용돈이라도 내 손으로 벌자 싶어서 광주에 있는 대우캐리어 조립라인에 취직을 했죠. 2년 계약직으로. 해 보니까 할 만하더라고요. 이제는 그런 생각 전혀 없죠.”
그 뒤로도 카시트 공장 등지에서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하다가 2002년 수원에 사는 형님의 권유로 경기직업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이왕 생산직으로 일할 바에야 기술을 가져야겠 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운영하는 직업전문학교는 학비가 면제되고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 있어 객지생활을 해야 하는 경호씨에겐 안성맞춤이었다.

경호씨는 연구개발팀 소속으로 가스절단기의 배선과 조립을 맡고 있다. 일은 재미있고 할 만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처음 배운 일이라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많다. 그래서 부지런히 공부를 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전기공사 기능사보다 한 단계 높은 전기기사 자격증 취득 준비도 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길을 바꾸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누구나 자기 전공을 살려 일하고 싶어하죠. 하지만 둘러보면 전공대로 일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스스로 길을 찾아야죠. 제게 장점이 있다면 힘들어도, 싫은 소리 들어도, 잘 참는 거예요.” 뼈아픈 일들을 제법 겪었을 법도 하건만 말수 적은 데다 목소리까지 높낮이 없이 덤덤한 경호씨의 대답을 듣고 있노라니, 공연히 대졸 미취업생들의 고민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공장 옆 사무동 3층의 회사 기숙사에 사는 경호씨는 보통 아침 6시 40분쯤 일어나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1층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8시 30분에 일을 시작한다. 일이 많을 땐 잔업도 하지만 요즘은 수요처인 건설경기가 위축되어 잔업이 거의 없다. 경력이 전혀 없는 경호씨의 월급은 기본급 95만원에 연봉 2100만원. 뗄 거 다 떼고 보통 한 달에 115만을 손에 쥔다. 상여금이 나오는 달은 그보다 많지만, 메치나 업어치나 빠듯한 돈이다. 그나마 기숙사 생활을 하는 덕에 적게나마 저축을 할 수 있다.
금광테크는 교통이 불편한 개발지역에 있어서 직원의 절반 가까이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그래도 토요일이면 다들 집으로 가고, 기숙사는 문을 닫는다. 기숙사에 혼자 남을 수 없어 경호씨도 방 값이 싼 안산에다 원룸 전세를 하나 마련해, 주말이면 ‘집’으로 간다.
“특별히 불편한 건 없어요. 세탁기도 있고, 휴게실에 텔레비전도 있고, 제 방엔 컴퓨터도 갖다 놓았고. 식당 밥도 먹을 만해요. 제일 불편한 건 여가나 문화 생활을 하기가 힘들다는 거죠. 화성시청 있는 남양동이 이곳의 번화가라 할 수 있는데, 거기 가는 버스가 두 시간에 한 대밖에 없어요. 여름에 남양에 있는 헬스클럽을 다녔어요. 근데 같이 다니던 동료가 그만두어서 저도 관뒀죠. 그 친구 차를 얻어 타고 다녔거든요.” 경호씨는 안산의 ‘집’으로 갈 때도 동료 차를 얻어 타고 간다. 안산에 가면 극장엘 자주 간다. 오래된 명작 영화 DVD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을 정도로 경호씨는 영화를 좋아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가 있냐고 물었더니 예의 그 덤덤한 대답이 돌아온다. “뭐, 남들이 좋다고 하는 영화를 주로 보죠.”

6시 30분, 일이 끝났다. 모처럼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과 함께 ‘왕뚜껑 삼겸살’ 집에 모여 앉았다. 동료들의 분류에 따르면 경호씨는 “친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다. 경호씨와 가장 친하다는 직업전문학교 동기생 정선균씨더러 “윤경호씨를 한 마디로 표현해 달라” 부탁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삼겹살은 삼겹살이고 왕뚜껑은 왕뚜껑인 사람이죠.” 경호씨와 기숙사 방을 함께 쓰는 조대희씨는 더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좋게 말하면 원칙주의자고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다고 할 수 있죠.” 경호씨 자신은 “잘 참는 것” 외에 “한번 맘먹은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는다. 경호씨가 대학 졸업한 이듬해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셨는데, 그게 안 좋았기 때문에 경호씨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또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체질이라 술도 전혀 안 마신다. 영화 외에 다른 취미가 있다면 디지털 카메라를 포함해 첨단 기기에 관심이 많다.

경호씨의 장래 계획 1순위는 결혼이다. 위로 형님 한 분, 아래로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가 있는데 모두 결혼했다. “사실 저는 결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데 어머니가 저보다 더 애타하시죠. 선도 몇 번 봤는데, 직장도 그렇고 나이도 그렇고 쉽지는 않죠.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고. 어제도 어머니 아는 분 소개로 서른세살 된 분을 만났어요. 프리랜서 편집 일을 하고 있다더군요. 근데 그쪽도 집에서 나가라니까 마지못해 나온 거 같더라고요.” 경호씨의 어머니는 고향인 구례에서 혼자 농사를 짓고 사신다. “일단 결혼을 해야죠” 하면서도 아닌 게 아니라 경호씨는 그다지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런 말 하는 거 알면 어머니한테 맞아 죽을 거”라고 웃으며 덧붙이는 표정에는 혼기를 훌쩍 넘긴 아들 때문에 속태우는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난다.
늦게 낯선 분야에 뛰어들긴 했지만 경호씨는 앞으로 “어디서 일하든 전기계통 일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돈을 좀 모으면 자동기기 분야에서 “내 사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 뒤에 경호씨는 이런 단서를 붙인다. “주변에 보면 돈 모으느라 고생만 하는 사람들 많아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많이 못 모으더라도 할 건 하고 즐길 건 즐기며 살고 싶어요. 근데 또, 그렇게 살려면 어느 정도의 돈은 있어야겠죠?”

요즘은 비분과 강개가 곳곳에 넘쳐난다. 그래서인지 경호씨의 짧은 말과 덤덤한 목소리가 심심하게도 느껴진다. 그러나 어쩌면 자신을 애써 설명하려 않는 경호씨 같은 사람이야말로 넘쳐나는 비분강개의 진위를 판정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경호씨의 두꺼운 귀를 통과해 경호씨의 고집스런 마음까지 가 닿는 것들은 아마도 ‘원칙’의 이름을 얻을 것이다.

/글 유시주·사진 백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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