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일꿈>‘가난한 행복’을 선택한 이후(정욱식 2004.10.29)

지역내일 2004-10-29 (수정 2004-10-29 오후 1:22:17)
‘가난한 행복’을 선택한 이후
정 욱 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www.peacekorea.org

나의 졸업을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여기셨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평화운동에 뛰어든 지 어느덧 5년이 훌쩍 지났다.
어릴 적 소풍 때만 되면 “어떻게 하면 빠질 수 있을까” 잔머리를 굴렸던 ‘가난한 소년’의 꿈이 담긴 선택이기도 했다.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의 가난을 겪으면서 내가 키워온 꿈은 ‘가난한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가난하지 않다. “밥은 제대로 먹고살겠냐”, “결혼은 할 수 있겠냐”…. 많은 분들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내 체중은 5년 동안 5kg나 불었고, 부모님도 흡족해하시는 여성을 만나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헝그리 정신’만 유지한다면 밥걱정은 안 해도 된다. 가끔은 ‘나를 만난 게 죄’라는 친구들한테 술한잔 정도를 살 수 있는 경제력도 갖게 되었다.
‘1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던 단체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5년 동안 10번의 이사 경력이 말해주듯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더부살이를 하다가 느닷없이 쫓겨나기도 했고, 친구의 옥탑 자취방에서 무더운 여름을 보낸 적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어엿한 사무실을 구해 다른 단체와 함께 사용하고 있다. 매년 홍역을 치르듯 반복되었던 사무실 걱정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재정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처음 2년 동안은 ‘더부살이’를 앞세워 매달 30-40만원을 가지고 단체를 운영했지만, 지금은 매달 2-3백만원 정도의 후원금이 들어온다. 워낙 없이 사는 게 익숙해진 탓인지,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내 내 속의 무책임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은 ‘기분 좋은 걱정’을 하고 있다. ‘One man NGO’로 오랫동안 단체 일을 해왔는데, 식구들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지금은 나를 포함해 상근자 3명, 반상근자 2명이 평화네트워크에서 일하고 있다. 수입은 별로 늘지 않았는데 식구들이 늘었으니, 단체의 대표로서 기분 좋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걱정은 지난주 MT에서 ‘11월은 회원 확대의 달’이라는 결의로 이어졌다.
평화네트워크의 꿈은 평화이다. 반세기를 넘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고, 사람들은 갈수록 먹고살기 힘들어지는데 무기 사들이는 돈은 갈수록 늘어나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미국의 침략전쟁에 부역자로 나서는 한국이 아니라 친구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한국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갈 길은 멀지만 희망은 보인다.
새파랗게 젊다는 것을 한 밑천으로 삼아 우리 평화네트워크는 평화를 만드는 작지만 큰 힘이 될 것이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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