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용산구 서계동 서울 서부역 뒤편. 긴 골목길을 20여분 정도 올라가면 허름한 2층집이 보인다. 여기가 여성노숙자 쉼터인 ‘열린여성센터’.
현재 열린여성센터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거리 노숙생활을 거친 여성들 21명이 함께 살고 있다. 서울지역 노숙자 집결지로는 서울역과 영등포역, 을지로역 주변을 들 수 있다. 여성노숙인들도 이곳 주변을 떠돌다 쉼터를 찾게 됐다.
그 중 세 명은 가정폭력을 피해 자녀를 데리고 무작정 길거리에 나서서 떠돌다 들어온 분들이다. 최근에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인근 초등학교에 다닌다. 방과 후에는 공부방에 모여 숙제를 하며 지내고 있다.
열린여성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서정화 소장은 “여성 노숙인 중에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길거리에 나서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상처가 많은 분들이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복지가 완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가족의 지지망도 잃고 거리로 밀려난 분들이 바로 여성노숙인”이라고 소개했다.
사무실이 딸려있는 1층 거실에 들어서자 열분 남짓이 둘러앉아 무언가 바삐 손을 놀리고 있다. 부업으로 반지나 귀걸이 등의 포장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정화 소장은 “직장에 취업한 분도 있으나 대부분 시장에 가서 야채나 다듬어주는 허드렛일 밖에는 일이 없다”며 “자활의 기반을 쌓으려면 전문적 직업교육을 받아야 할텐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거리의 위험 더 큰 여성노숙인 =열린여성센터는 불과 몇 개월전만 하더라도 거리 노숙자들에게 밤 시간 편의를 봐주는 ‘드롭인센터’역할을 했다. 여성드롭인센터를 1년 동안 운영하는 동안 실내생활에 길이든 여성노숙인들을 모아 만든 쉼터가 열린여성센터가 됐다.
사단법인 노숙인복지회 최성남 사무국장은 “낮에는 거리에 있다가도 밤에 돌아와 쉬거나 빨래를 하는 단기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 드롭인센터”라며 “드롭인센터는 거리와 쉼터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드롭인센터는 저녁 6시에 들어와 아침 9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서 여성 거리노숙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여성노숙인들은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 등 남자 노숙자들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
최성남 사무국장은 “아이큐 80∼90 정도의 정신지체 여성노숙자들은 자체 판단능력이 부족해 거리에서 임신을 한 후 미혼모 출산시설에 보내져 아이를 낳아 입양절차를 밟는 경우가 필수코스”라며 “그 이후에도 다시 역주변 노숙인으로 나서서 똑같은 쳇바퀴를 도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드롭인센터는 성범죄로부터 여성노숙인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따뜻하고 안전한 잠자리를 제공해 여성노숙인을 다시 거리에 나가기 싫어하고 공동생활을 익숙하게 하는 학습성과도 내오고 있다.
최 사무국장은 “현장연구와 드롭인센터 운영경험을 통해 여성들이 거리에서 처하는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공간이 있는 한 원하는 노숙인은 무조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쉴 수 있는 것이 사회복귀 과정 =1층에 거주하는 김해성(가명·25)씨는 지난 5월 쉼터를 처음 찾았을 때만해도 전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밥만 먹을 뿐 말 한마디 없이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김씨의 부모는 그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이혼했다. 그는 아빠가 재혼한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학교 때 가출했다. 그 이후로는 유흥업소를 전전하다 힘이 들면 집을 찾아 돌아가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울증이 심해져 집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다. 김씨는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쉼터를 찾게됐다.
서정화 소장은 “한달 동안 편하게 놔두고 잘잤니, 밥먹어라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다”며 “ 감싸주고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니 1개월만에 처음 웃음을 보이고 그 다음부터는 함께 어울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순이(가명·34)씨는 나이보다는 10년은 더 들어보이는 얼굴이다. 그 만큼 삶에 지친 탓이다. 보육원에서 자라 술집카페에서 일하던 중 그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했지만 사정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선원인 남편은 단 한번도 월급봉투를 가져다주지 않고 술만 먹었다하면 폭력을 휘둘렀다. 견디다 못한 이씨는 네 명의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가출했다. 노숙생활과 쉼터를 전전하다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이제 직장까지 얻었다.
서대문 정신병원센터 노정균 박사는 “처음 쉼터를 찾을 때만해도 병원에서도 보기 힘든 중증 정신장애를 가진 분들이 불안과 긴장의 연속인 길거리 노숙생활을 벗어나자 놀라운 속도로 호전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쉼터에 와서 잘 곳과 먹을 곳이 정해지고 편안히 쉴 수 있게 돌봐주는 안정적 인간관계가 정신장애를 치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정균 박사는 2주에 한번 열린여성센터를 찾아와서 쉼터 노숙인들을 진료하고 있다.
노 박사는 “노숙자들은 거리에서 정신적 상처와 외상을 반복적으로 받아 체질화되면 사회복귀가 어려워지므로 초기에 지원센터와 연결해 부랑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숙생활이 습관화된 결과 부랑화하면 노숙쉼터 규율에 적응이 안되고 거리를 계속 떠돌 수 밖에 없어 사회복귀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자활기반 마련이 근본적 대책= 이순이씨는 현재 남편과의 이혼소송을 준비하면서 텔레마케팅 업체에 취직해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열린여성센터에 거주하는 이들 중 가정을 이루고 있는 세 사람 모두 직장을 구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미용직업학교를 다니면서 식당 서빙을 하는 등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사람도 있다.
서정화 소장은 “언론보도를 보면 마치 술을 먹고 무위도식하는 것으로 노숙생활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노숙자 중에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자립을 꿈꾸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파출부나 식당에서 일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4, 50대 중년여성은 용돈이나마 벌겠다고 부업전선에 나서는 상황이라는 것.
서정화 소장은 “이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자활프로그램을 마련, 쉼터에 예산지원을 해주었으나 3년 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폐지됐다”며 “직업훈련에 대한 지원도 없고, 그 외의 자활지원 사업도 없어 쉼터 노숙인들의 미래가 너무나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최성남 사무국장도 “원래 쉼터는 임시 성격이 강해서 자활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들 힘으로는 부족하다”며 “특히 직업교육과 함께 영구임대주택 등의 독립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다시 길거리 노숙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근본방안”이라고 지적했다.
/박정미 기자 pjm@naeil.com
현재 열린여성센터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거리 노숙생활을 거친 여성들 21명이 함께 살고 있다. 서울지역 노숙자 집결지로는 서울역과 영등포역, 을지로역 주변을 들 수 있다. 여성노숙인들도 이곳 주변을 떠돌다 쉼터를 찾게 됐다.
그 중 세 명은 가정폭력을 피해 자녀를 데리고 무작정 길거리에 나서서 떠돌다 들어온 분들이다. 최근에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인근 초등학교에 다닌다. 방과 후에는 공부방에 모여 숙제를 하며 지내고 있다.
열린여성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서정화 소장은 “여성 노숙인 중에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길거리에 나서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상처가 많은 분들이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복지가 완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가족의 지지망도 잃고 거리로 밀려난 분들이 바로 여성노숙인”이라고 소개했다.
사무실이 딸려있는 1층 거실에 들어서자 열분 남짓이 둘러앉아 무언가 바삐 손을 놀리고 있다. 부업으로 반지나 귀걸이 등의 포장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정화 소장은 “직장에 취업한 분도 있으나 대부분 시장에 가서 야채나 다듬어주는 허드렛일 밖에는 일이 없다”며 “자활의 기반을 쌓으려면 전문적 직업교육을 받아야 할텐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거리의 위험 더 큰 여성노숙인 =열린여성센터는 불과 몇 개월전만 하더라도 거리 노숙자들에게 밤 시간 편의를 봐주는 ‘드롭인센터’역할을 했다. 여성드롭인센터를 1년 동안 운영하는 동안 실내생활에 길이든 여성노숙인들을 모아 만든 쉼터가 열린여성센터가 됐다.
사단법인 노숙인복지회 최성남 사무국장은 “낮에는 거리에 있다가도 밤에 돌아와 쉬거나 빨래를 하는 단기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 드롭인센터”라며 “드롭인센터는 거리와 쉼터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드롭인센터는 저녁 6시에 들어와 아침 9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서 여성 거리노숙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여성노숙인들은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 등 남자 노숙자들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
최성남 사무국장은 “아이큐 80∼90 정도의 정신지체 여성노숙자들은 자체 판단능력이 부족해 거리에서 임신을 한 후 미혼모 출산시설에 보내져 아이를 낳아 입양절차를 밟는 경우가 필수코스”라며 “그 이후에도 다시 역주변 노숙인으로 나서서 똑같은 쳇바퀴를 도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드롭인센터는 성범죄로부터 여성노숙인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따뜻하고 안전한 잠자리를 제공해 여성노숙인을 다시 거리에 나가기 싫어하고 공동생활을 익숙하게 하는 학습성과도 내오고 있다.
최 사무국장은 “현장연구와 드롭인센터 운영경험을 통해 여성들이 거리에서 처하는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공간이 있는 한 원하는 노숙인은 무조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쉴 수 있는 것이 사회복귀 과정 =1층에 거주하는 김해성(가명·25)씨는 지난 5월 쉼터를 처음 찾았을 때만해도 전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밥만 먹을 뿐 말 한마디 없이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김씨의 부모는 그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이혼했다. 그는 아빠가 재혼한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학교 때 가출했다. 그 이후로는 유흥업소를 전전하다 힘이 들면 집을 찾아 돌아가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울증이 심해져 집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다. 김씨는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쉼터를 찾게됐다.
서정화 소장은 “한달 동안 편하게 놔두고 잘잤니, 밥먹어라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다”며 “ 감싸주고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니 1개월만에 처음 웃음을 보이고 그 다음부터는 함께 어울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순이(가명·34)씨는 나이보다는 10년은 더 들어보이는 얼굴이다. 그 만큼 삶에 지친 탓이다. 보육원에서 자라 술집카페에서 일하던 중 그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했지만 사정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선원인 남편은 단 한번도 월급봉투를 가져다주지 않고 술만 먹었다하면 폭력을 휘둘렀다. 견디다 못한 이씨는 네 명의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가출했다. 노숙생활과 쉼터를 전전하다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이제 직장까지 얻었다.
서대문 정신병원센터 노정균 박사는 “처음 쉼터를 찾을 때만해도 병원에서도 보기 힘든 중증 정신장애를 가진 분들이 불안과 긴장의 연속인 길거리 노숙생활을 벗어나자 놀라운 속도로 호전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쉼터에 와서 잘 곳과 먹을 곳이 정해지고 편안히 쉴 수 있게 돌봐주는 안정적 인간관계가 정신장애를 치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정균 박사는 2주에 한번 열린여성센터를 찾아와서 쉼터 노숙인들을 진료하고 있다.
노 박사는 “노숙자들은 거리에서 정신적 상처와 외상을 반복적으로 받아 체질화되면 사회복귀가 어려워지므로 초기에 지원센터와 연결해 부랑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숙생활이 습관화된 결과 부랑화하면 노숙쉼터 규율에 적응이 안되고 거리를 계속 떠돌 수 밖에 없어 사회복귀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자활기반 마련이 근본적 대책= 이순이씨는 현재 남편과의 이혼소송을 준비하면서 텔레마케팅 업체에 취직해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열린여성센터에 거주하는 이들 중 가정을 이루고 있는 세 사람 모두 직장을 구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미용직업학교를 다니면서 식당 서빙을 하는 등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사람도 있다.
서정화 소장은 “언론보도를 보면 마치 술을 먹고 무위도식하는 것으로 노숙생활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노숙자 중에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자립을 꿈꾸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파출부나 식당에서 일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4, 50대 중년여성은 용돈이나마 벌겠다고 부업전선에 나서는 상황이라는 것.
서정화 소장은 “이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자활프로그램을 마련, 쉼터에 예산지원을 해주었으나 3년 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폐지됐다”며 “직업훈련에 대한 지원도 없고, 그 외의 자활지원 사업도 없어 쉼터 노숙인들의 미래가 너무나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최성남 사무국장도 “원래 쉼터는 임시 성격이 강해서 자활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들 힘으로는 부족하다”며 “특히 직업교육과 함께 영구임대주택 등의 독립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다시 길거리 노숙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근본방안”이라고 지적했다.
/박정미 기자 pj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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